미국 민주당 전당대회 개막식은 영욕으로 점철된 빌 클린턴 대통령의 화려한 정치적 퇴장무대가 됐다.14일 오후 7시52분 전당대회장인 로스앤젤레스 스테이플스센터에 빌 클린턴 대통령이 등장하자 다소 어수선하던 장내는 순식간에 숨소리도 들리지않을 정도로 조용해졌다.
3분여 기립박수에 이어 클린턴은 만감이 교차되는 표정으로 장내를 돌아본 후 다소 잠긴 목소리로 "로스앤젤레스는 앨 고어라는 21세기의 새대통령을 출범시키는 도시”라고 말문을 열었다.
클린턴은 "당원들의 아낌없는 지지로 지난 8년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며 재임기간중 자신과 고어 부통령이 이룩한 치적을 일일이 열거했다.
연설 초반만해도 초췌한 모습이던 클린턴은 일자리 2,200만개 창출, 25년만의 최저범죄율, 30년이래 최저실업율, 사상 최고의 주택보유율과 재정흑자, 환경보전 등 20여분에 걸쳐 민주당 정권이 쌓아올린 성과를 나열해 나가면서 특유의 자신감 넘치는 톤과 제스처를 회복해나갔다.
대의원들은 "역시 클린턴”이라는 탄성과 함께 박수로 호응했다.
클린턴은 코소보사태 해결 등 외교치적을 거론할 때는 인권에 바탕한 외교정책의 공을 VIP석에 앉아있던 지미 카터 전대통령에게 돌리며 당원들의 갈채를 유도하는 여유마저 보여줬다.
이 과정에서 클린턴은 요소요소에서 이 모든 공적은 훌륭한 지도력과 판단력을 겸비한 앨 고어의 덕분이라며 '고어 띄우기’를 잊지않았다.
클린턴은 경제호황이 운이 좋아 이룩됐을 뿐이라는 공화당측의 비난에 대해 "미국이 성취한 업적은 기회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올바른 선택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반박하는 등 원고에도 없는 즉석 발언을 첨가하며 완전히 장내를 장악해나갔다.
클린턴은 특별히 뉴욕주 상원의원에 출마한 부인 힐러리를 거론하며 "그는 위대한 퍼스트레이디였을 뿐아니라 항상 가족과 뉴욕과 미국을 위해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클린턴은 "여름 폭풍우가 몰아치던 54년전 남부에서 태어난 나는 미국민들의 도움으로 꿈을 이룰 수 있었으나 이제 머리는 세어지고 주름살도 늘어간다”며 감상적 내용으로 연설을 마무리했다.
이날 성대하게 정치무대 은퇴식을 마친 클린턴은 15일 오전 시카고 먼로시로 날아가 앨 고어대통령을 만나 당권 이양식을 가진 뒤 뉴욕의 레이크 플레시드별장에서 여름휴가를 보낼 예정이다.
클린턴에 앞서 이날 연단에 오른 힐러리는 가정의 행복과 교육개혁을 이룩하는 데는 자신이 적임자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이날 클린턴의 연설에 대해 워싱턴포스트와 USA투데이 등은 죽기직전에 딱한번만 노래한다는 백조의 우화에 비교해 '백조의 노래’를 부르고 무대에서 사라졌다고 평했다.
한편 이날 나흘간의 일정으로 개막된 민주당 전당대회에는 4,339명의 대의원들이 참석했다.
민주당은 오는 16일 앨 고어 부통령과 조지프 리버만 상원의원을 민주당 정·부통령 후보로 선출하며 고어는 17일 후보수락연설을 한다.
첫날 개막식에서는 아시아계 최초 주지사인 게리 록 워싱턴 주지사, 그레이 데이비스 캘리포니아 주지사, 다이앤 파인스타인 상원의원 등이 나와 고어 지지 연설을 했다.
시민단체 휘원 등 약 1만여명은 이날 전당대회장 맞은편 광장과 인근 퍼싱 광장에 집결, 세계무역기구(WTO)와 핵무기철폐 등을 요구하는 집회를 갖고 가두행진을 벌여 도심 교통이 한때 마비됐으며 시위대중 10여명은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로스앤젤레스=윤승용특파원 syy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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