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_정주영, 한국 재계사에 영원히 남을 불멸의 맞수다. 각각 삼성과 현대그룹의 창업자로 자웅을 겨루던 당대의 선두 다툼은 양자의 대칭형 스타일로 인해 더욱 흥미로웠다.각종 여론조사에서도 둘은 1,2위로 앞서거니 뒤서거니하면서 지난 20세기 한국 최고의 경영자로 기록되어 있다. ‘이병철의 경영철학’이니 ‘정주영의 기업관’이니 하는 이름의 강좌가 지금도 대학 등에서 이어지고 있다.
■‘독일 병정’과 ‘닳지 않는 건전지’. 심리학 전공의 한 국내 경영컨설팅 전문가가 두 사람의 성격 비교 연구를 통해 이런 별명을 붙인 적이 있다.
독일병정은 물론 이 전회장이고, 건전지는 정 전회장이다. 톱니가 돌아가듯 치밀한 기계력으로 사업의 대미를 이끌어 냈던 이 전회장과, 무모할 정도로 일을 벌인 후 극복의 신화를 만들어 가는 정 전회장의 대조적 스타일은 한동안 국내 기업경영의 양대 전형(典型)을 이뤘다.
■두 사람은 지금 서로 생을 달리 하고 있다. 이 전회장은 1987년 77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반면 정 전회장은 10여년이 지난 얼마 전까지도 경영일선에서 노익장을 과시해왔다. 그런 그가 일주일 넘게 병상에 누워있다. 85세의 고령에 최근 한달여 사이 다섯 번이나 입원한 사실이 예사롭지 않다. 더욱이 그가 평생에 걸쳐 일군 기업마저 극심한 내우외환에 처해 안쓰럽기만 하다.
■국민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줬던 지난날 정 전회장의 진취적 기상이 눈에 선하다. 말년에 가부장적 권위가 서지 않아 심한 허탈감으로 건강이 악화했다는 씁쓸한 이야기도 전해진다. 심신이 모두 쇠잔한 그의 노환을 두고 볼 때, 이제는 자식들이 아버지의 명예를 헤아려 마지막 효심을 발휘해야 옳다.
아마도 정 전회장이 후대에게 바라는 진정한 수성지업(垂成之業)은 무에서 유를 일궈낸 창조적 정신의 대물림이 아닐까. 이 전회장과 달리 그가 일찍이 자신의 그룹을 쪼개는 분할구도를 짜놓은 것도 그런 뜻일 것이다.
/송태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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