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남쪽 언론사 사장단과 만나 남북관련 여러 현안에 언급한 내용은 역시 솔직·담대함이 인상적이다. 이미 남북 정상회담에서 파격적 언행을 선보였지만, 민감한 사안에 대해 자신의 생각과 그 배경, 고충까지 직설적으로 밝혔다.폐쇄국가 지도자에게서 일찍이 보지 못한 공개 ‘정책 브리핑’이라 할 만하다. 계산과 복선 등을 떠나, 북한의 처지와 이해를 터놓고 밝히면서 여러 의문과 미진함을 해소하려는 자세를 평가하고자 한다.
우선 두드러진 것은 합리적 현실인식과 협력의지다. 이산가족 상봉의 장래에 대한 남쪽의 우려를 의식, 상봉 행사를 계속하고 가정방문도 실현시킬 뜻을 밝힌 것이 대표적이다.
개성공단 건설 합의와 언론·관광 등의 교류협력 확대가 남북 공동선언에 대한 ‘선물’이자, 정상간 합의를 이행하는 것임을 분명히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교류협력이 절박함을 솔직하게 밝힌 점은 놀랄 정도다. “외부에 식량을 구걸하는 형편에, 달리 숨길게 없다”는 식의 발언을 주저하지 않은 것이다.
남북 직항로 개설의 타당성과 군부의 반대를 물리친 경위에 언급한 대목도 마찬가지다. 또 경의선 연결에 휴전선 2개 사단을 투입할 뜻을 공개한 것은 경제를 위해 군사적 고려를 상당부분 희생할 태세임을 알리려는 의도적 발언으로 보인다.
남북화해에 맞춰 노동당 규약을 개정할 계획을 확인하면서 덧붙인 설명도 주목된다. 낡고 과격한 표현의 당 강령과 규약을 고칠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이른바 ‘혁명 1세대’의 반발을 언급한 것이다. 북한체제의 존립근거인 당 강령과 규약 등의 개정을 우리의 국가보안법과 곧장 연계할 수 없다는 설명과 함께, 진지한 고민으로 보아 줄 측면이 있다. 이는 또 북한체제의 변화를 요구하는데 있어서도 체제내부의 역학을 고려할 필요가 있음을 일깨운다. 경직된 상호주의에 따른 압력이 능사가 아니라는 얘기다.
미사일 개발에 관한 설명도 그대로 들을 필요가 있다. 북한 미사일의 위협성을 미국이 어떻게 평가하는 가와 관계없이, 김위원장의 설명과 일치하는 분석이 이미 숱하게 나왔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발언이 낳은 ‘개발포기설’소동도 문제의 본질을 오해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흔히 걱정하듯이, 김위원장의 발언을 무작정 긍정적으로 평가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가 이토록 파격적인 ‘정책 설명’에 애쓰는 근본이 생존을 위한 화해협력 의지에 있다는 점을 편견없이 보자는 것이다. 우려와 경계심때문에 화해협력을 진전시키는 데 주저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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