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원일 장편소설 ‘가족’실향민 3대 삶 통해 굴곡진 현대사 포착
해방 55주년이 되는 15일은 남북한의 이산가족이 50년 만에 만나는 날. 이산가족_실향민 문제는 한국 현대사의 모든 굴곡이 한맺혀 있는 응어리이기도 하다.
마침 출간된 김원일(58)씨의 장편소설 ‘가족’(문이당 발행·전2권)은 바로 실향민 3대의 이야기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염상섭의 ‘삼대’가 20세기 전반기 식민지시대의 가계도였다면, 김씨의 이번 소설은 실향민 3대의 모습을 통해 20세기 후반 한국인의 총체적 삶을 그려보려 한 시도로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6·25부터 IMF까지
간결·건조한 문체묘사
한국전쟁 당시 평양에서 부인과 아들 하나를 데리고 월남, 서울에서 평양냉면집을 열어 성공한 김석현의 여든여덟살 미수 잔치를 위해 가족들이 모이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냉면집을 물려받아 경영하던 장남 김치효 내외는 얼마 전 경영에서 손을 떼고 지배인에게 세를 놓았고, 그의 큰 아들 김용규는 미국 유학해서 벤처 컴퓨터회사에 다닌다.
둘째아들 시규는 심장질환과 자폐증을 앓는 어린 두 아들 때문에 알코올 중독에 이어 마약에까지 손을 대는 폐인이 돼 노숙자 생활을 하다 결국 젊은 나이에 숨을 거둔다.
딸 김선결은 운동권 출신으로 지금은 장애아를 위한 사회복지시설을 운영중이다. 예술적 기질이 있는 막내아들 김준은 커피점을 경영하다 IMF로 어려움을 겪자 도시문명을 벗어나 산골로 떠난다.
김치효의 부인 장여사는 둘째 아들을 잃는 슬픔을 겪고 집안이 서서히 무너져가는 과정을 목도하며 사이비 종교에 빠져든다….
이런 구도에서 볼 수 있듯 작가 김씨는 ‘가족’에서 전쟁과 이데올로기 분쟁, IMF의 고통과 새로운 문명적 대안으로서의 자연친화적 삶 등 우리 현대사의 문제를 하나의 벽화로 객관화하려는 의욕을 보이고 있다.
실향민 1세대 김석현은 고난 속에서도 성공적으로 가계를 세웠다.
2세대 김치효는 가계 잇기에 전념했다.
그러나 3세대에 이르면 가족은 현실적 기회주의자(김용규) 운명에 무너진 현실 부적응자(김시규) 숭고한 정신의 개혁주의자(김선결) 허무주의적 예술가(김준)로 다양한 삶의 변주를 보인다.
이처럼 20세기 후반 한국의 50년을 총체적으로 포착하려 한 작가 김씨의 문체도 이번 소설에서는 많이 변했다.
그가 새롭게 시도한 간결하고 건조한 문쳬는 작품의 긴박감을 더한다. 요즈음 젊은이들의 삶에 대한 세밀하고 깊이있는 묘사를 음악 미술 문학 등에 대한 해박한 지식에 담아 전달하고 있는 것도 소설을 읽히게 하는 요인이다.
‘가족’은 1999년 12월 31일 김준이 밤기차 입석표로 도시를 떠나 산골을 찾아가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작가는 21세기에 일어날 일은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그가 제시하는 새로운 삶에 대한 대안은 운동권 출신으로 낮은 곳에서의 삶을 살아갈 것을 결심하는 김선결, 시속을 버리고 ‘별이 더욱 영롱하게 보이는 하늘’을 찾아 떠나는 김준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 최인호 연작소설 '가족'
따뜻하고 소박한 삶 잡지연재 300회 기록
소설가 최인호(55·사진)씨가 월간 ‘샘터’에 연재해 온 연작소설 ‘가족’이 9월호로 300회가 됐다.
국내 잡지 역사상 연재 300회를 기록한 것은 ‘가족’이 최초이다.
최씨가 이 소설을 처음 쓴 것은 ‘샘터’ 1975년 9월호. 당시 서른살이던 최씨는 이제 50대 중반의 나이가 됐다.
샘터 연재 25년 여정
원고지 모두 6,000장 넘어
그간 쓴 원고지 매수는 6,000장을 넘는다. ‘가족’은 그동안 5권의 책으로 묶여져나왔고 80년대에는 TV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가족’은 무엇보다 최씨가 실제 자신의 가족생활을 토대로 일기를 쓰듯 꾸밈없이 진솔하게, 우리 사회 보통 사람들의 나날의 삶의 모습을 보여준 데서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최씨는 이 소설에서 부인과 연애하던 시절부터 결혼에 골인한 사연, 신혼시절을 거쳐 두 아이를 낳고 키우며 그들이 자라가는 모습, 시집장가 보내는 이야기들까지 하나하나 기록했다.
그 가족이 울고 웃으며, 사회 속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모습은 그대로 25년간 한국사회가 변화해온 실상이기도 하다.
매회 원고지 20장 내외의 짤막한 에피소드가 주는 진한 감동은 최씨 특유의 꾸밈없고 유머넘치는 문체에다, 이렇게 우리들 이웃의 현실이 담겨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최씨는 “우리 집 안방에서 일어나는 일은 다른 가족에게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지금 이 시대에 함께 사는 사람은 동시대에 태어난 것만으로도 신비한 인연의 끈을 갖고 있는 또 하나의 가족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첫 연재를 시작할 당시 ‘나는 피리부는 사나이’를 부르던 네 살짜리 딸 아이 다혜는 시집을 갔고, 아들도 어느새 이십 대의 씩씩한 청년으로 자랐습니다.
그간 ‘가족’ 초반에 등장했던 구성원들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어머니와 큰누이, 셋째 누이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다른 글은 다 제쳐두고라도 이 ‘가족’만은 계속 쓰고 싶다는 바람을 피력했다.
수필가 피천득 선생은 “최인호씨의 ‘가족’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가족의 따뜻함을 나눌 수 있는 것은 큰 기쁨”이라고 말했다.
권오중 잡지협회 국장은 “‘가족’이 우리나라 잡지 역사상 최초로 연재 300회를 돌파한 것을 축하한다”고 밝혔다.
최씨는 여전히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고 자신의 표현대로라면 ‘수제비를 만들듯’ 원고지에 글을 쓴다.
샘터사는 9월호에서 ‘악필’로 유명한 최씨의 ‘가족’육필원고 내용 알아맞히기 행사(디지틀샘터 www.samtoh.com)도 벌인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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