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반세기만에 이산가족을 상봉하는 남측가족들은 피맺힌 한과 기쁨이 뒤섞인 말들을 남겼다. 한국일보가 인터뷰한 남측 이산가족들의 ‘상봉의 변’을 모아본다.“작은 누이와 남동생들이 어떻게 이 모진 세월을 견뎠는지…. 벌써 통곡할 것만 같다.”(박영일씨·77)
“만나게 될 아내가 차라리 내 빰을 한대 쳤으면 좋겠다. ‘이 나쁜 사람아. 어떻게 혼자 도망쳐서 이렇게 살아왔느냐’라면서. 그러면 내 죄책감이 훨씬 덜 할 것같다.”(이선행씨·80)
“50년전 헤어졌던 부인을 만나게 돼 감개무량하면서도 현재의 처에게 미안해 내색도 잘 못했는데, 처가 손수 짐을 싸주면서 나보다 더 좋아하는 모습을 보여줘 너무 고맙다.”(한재일씨·82)
“뭔가 쫓기는 꿈을 꿨다. 북에 빨리 가야겠다는 조급함과 불안감이 꿈에 나타난 것같다.”(김장수씨·67)
“원래 집 아닌 곳에서는 잠을 잘 못자는 체질인데다, 헤어진 처와 아들 딸을 만나러간다는 생각에 흥분해서 도저히 잠을 청할 수 없었다.”(이영찬씨·80)
“소원 풀었으니까 여한이 없다. 작은 아들 만나러 가는데 기다렸던 하루가 몇년 같다.”(강기주씨·90)
“(막내아들이) 살아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결혼은 했는지…. 시계랑 반지랑 끼워주고 싶다. 헤어질 당시 발이 얼마나 시려웠는지. 선물로 운동화도 준비했다.”(서순화씨·82)
“1·4후퇴때 (남쪽에) 3일쯤 있다가 북쪽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50년만에 간다고 생각하니 꿈인가 해 손바닥으로 따귀를 때려 보았다.”(선우예환씨·78)
정상원기자
ornot@hk.co.kr
고주희기자
orwel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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