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동안 쌓아놓은 신뢰를 불과 몇개월만에 잃어버렸다.”일요일인 13일 오후 3시 서울 계동 현대 본사 사옥 15층 회의실. 김재수(金在洙) 현대구조조정위원장이 정부·채권단과 현대의 합의사항을 읽어내려 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현대의 한 관계자의 말이다.
발표 내용은 사태의 발단이 됐던 정주영(鄭周永) 전 명예회장의 현대차 지분 6.1%를 매각한다는 것과 몇가지 자구계획을 추가한 것이다. 별로 대단한 내용도 없다. 단지 5월 31일 정 전 명예회장이 전문경영인체제를 골자로한 자구계획을 발표하면서 약속한 것을 이행하는 수준이다.
같은 시간 정부와 채권단에서는“현대의 자구계획안 발표는 만족할 만한 수준”이라는 논평이 기다렸다는 듯 동시에 터져 나왔다.
두달여를 끌어오며 시장에 찬물을 끼얹던 현대 사태는 정부·채권단과 현대가 각각 ‘실리’와 ‘명분’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일단 ‘봉합’됐다. 덕분에 시장은 살아나는 분위기다.
재계 일각에서는“현대가 자승자박해서 고생을 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하지만 정부는“현대가 숙제를 스스로 풀지 못해 대신 해준 것”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작 현대 사태를 지켜보며 속을 끓이던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의문을 나타내고 있다. 무엇을 위해서 정부와 현대가 그토록 싸워야 했을까. 한발짝도 앞으로 나간 것이 없다.
많은 사람들의 지적대로 정부와 현대가 싸워서 서로 얻은 것은 없다. 단지 양측이 신뢰만 잃어버렸다는 것이 시장관계자들의 반응이다. 결국 모두 패자가 된 셈이다.
조재우 경제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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