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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안감독의 변신… '광야'에서 액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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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안감독의 변신… '광야'에서 액션

입력
2000.08.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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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은 이유가 있다. 독특한 감각과 영상, 섬세한 묘사, 동양적 세계관으로 대만출신 리안은 거장이 됐다.1992년 ‘쿵후선생’으로 시작해 불과 4년. 그 사이 그는 ‘결혼피로연’(1993년·베를린영화제 금곰상) ‘음식남녀’(1994년·아카데미외국어영화상) ‘센스 앤 센서빌리티’(1995년·베를린영화제 금곰상, 아카데미 각색상) ‘아이스 스톰’(1996년)으로 동양과 서양의 인간과 가족이 부딪치며 만들어내는 사랑과 인생을 맛깔스럽고 소담하게 담아냈다.

그것으로 자신의 색깔 드러내기는 충분하다고 생각한 것일까.

그가 작은 울타리를 박차고 나와 동서양의 거대한 광야에서 액션을 시작했다.

미국의 광활한 대지에서 ‘라이드 위드 데블’을 외치고는, 중국 강호에 뛰어들어‘와호장룡’의 무협을 펼친다.

거장은 변신할 때를 안다. 그러나 모방하지 않고, 자신을 잃어버리지도 않았다.

▥ 와호장룡

무당파의 최고수 리무바이(주윤발)는 앙칼지게 덤벼드는 용(장지이)의 칼을 막으며 이렇게 말한다. “진정 강한 것은 부드러움이다.”

용은 리무바이의 스승을 죽인 ‘파란 여우’의 제자이자, 무당파의 보검인 청명검을 훔친 옥대인의 딸이다. 적이지만 리무바이가 규율을 깨고 수제자로 삼고 싶어하는 여자이기도 하다.

영화 속 리무바이는 와호장룡(臥虎藏龍·영웅과 전설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는 고대 중국 속담)’을 말한다.

모든 것이 부드럽게 움직인다. ‘우슈’의 동작을 따르는 무술도, 리무바이의 마음도, 그를 사랑하는 사제 수련(양자경)의 애달픔도, 그래서 종국에는 아픔으로 끝나버리는 스토리도, 그 스토리를 따라가는 감독의 시선도. 부드러움은 날카로운 ‘파란 여우’와 용이 부딪칠 때 더욱 진가를 발휘, 그들을 이기고, 순화시킨다.

마치 바람을 타고 하늘을 나는 새처럼, 주인공들은 흔들리는 대나무 숲을 옮겨 다니고, 물위를 걷고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비록 그것이 중국 무협물의 상투적 과장이라고 해도, 그 서정성에 마음을 빼앗긴다. 서극과도 다르고, 왕자웨이와도 다른 무협이다. 똑같은 테크닉이자만 ‘비천무’의 감정과잉의 액션이 얼마나 서툰지 알게 해준다.

‘와호장룡’은 도난당한 청명검을 찾는 범죄 수사극 형태로 원한과 복수, 그 과정에서 숨겨야 했기에 더욱 절실하고 안타까웠던 사랑과 인연을 이야기 한다.

이 생에서 그 사랑과 인연은 모두 이어질 수 없어 아득한 절벽 아래로 자신을 던져버리는 허무주의적 결말로 끝맺는다.

그렇다고 침울하고 무겁지만은 않다. 감독은 철학적이면서도 사뿐사뿐 걸음을 옮기고, 비장하면서도 재치와 유머를 잊지 않고, 환상적인 분위기에서도 인간적인 냄새를 곁들인다.

그러면서 이따금 전광석화같은 테크닉으로 영화의 리듬을 살린다. 무협물의 비현실성을 인간의 감정 속으로 끌어들이는 리안 감독 특유의 미학이다.

결코 혼자의 힘으로는 이루어 진 것은 아니다. 원작인 ‘왕두루’를 감독의 스타일에 맞게 고친 ‘음식남녀’의 왕휘링이 있었고, ‘매트릭스’의 무술감독 원화평이 연출한 환상적 액션을 ‘첩혈쌍웅’의 촬영감독 피터 파우가 유연하게 담아냈다.

요요마의 연주는 안 들리는 듯 영화 속에 스며들고, 마지막 코코리가 부르는 주제가 ‘A Love Before Time’조차 구름속으로 사라지는듯 애잔하다.

할리우드 진출에도 성공한 관록의 주윤발과 절제의 힘을 아는 양자경의 연기가 어우러졌으니. ‘와호장룡’은 그야말로 세계적인 중국계 스타들이 함께 만든 새 무협걸작인 셈이다. 19일 개봉.

▥ 라이어드 위드 데블

남북전쟁을 다룬 영화에서 남군은 흑인 노예를 무지막지하게 부리고, 잔인하기 짝이 없는 비인간적인 존재들로 규정됐다.

남군의 논리, 혹은 존재 방식에 의미가 있다고 말한느 것은 '인종차별이 일리있다'는 말처럼 '정치적'으로 위험한 말이다. 리안감독이 이 '정치적인' 예날 이야기에 손을 댔다. 아직 때가 묻지 않은 19세기의 남군 청년을 내세워….

'라이드 위드 데블'은 죽은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친구를 위해, 마을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민병대인 '부쉬웨커스'의 부대원이 된다. 그러나 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들의 명분을 잊어야 한다. 명분을 잊은 전장에선 살의와 생존 욕구만이 작렬한다.

백인 세청년 제이크(토비 맥과이어)와 잭(스킷 울리히), 조지(사이몬 베이커), 그리고 조지의 해방된 흑인 노예 홀트(제프리 라이트). 겨울이 찾아와 부대가 흩어지자 4명은 북군에 접수된 한 마을의 산 속에 참호를 파고 생활한다.

남군을 지원하는 마을의 원로는 미망인이 된 젊은 며느리 수우(쥬얼)을 보내 식사를 배달한다. 이들은 누추한 곳에서도 남부 신사의 예의를 갖춘다. 수우는 잭과 사랑에 빠지고 전투 중 총을 맞은 잭은 썩어가는 팔을 잘라 냈음에도 결국 죽고 만다.

제이크는 이 전쟁을 통해 친구를 잃고, 독일 이민자라는 이유로 같은 부대원인 피트(조나단 라이 메이어스)에게서 총상을 입으며, 죽은 잭 대신 아기를 낳은 수우의 남편이 된다. 광기에 싸인 피트의 연기는 매력적이다.

리안 감독의 전투장면은 같은 남북전쟁을 다룬 롤랜드에머리히 감독의 '패트리어트'에 못지 않게 스케일이 크다. 400명이 죽었다는 전설의 '로렌스 전투' 재연 장면에서는 화염에 휩싸인 광란의 학살 장면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리안 특유의 연출 감각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다. 잭의 노예 출신이지만 그저 주인을 위해 노예제 유지를 위한 전쟁에 참가한 흑인 노예 홀트가 "나는 다니엘 홀트"라면 자신의 성명을 말하는 순간부터 제이크는 홀트의 내면 변화를 눈여겨 보기 시작한다.

홀트의 내면을 '느끼게' 되면서 제이크는 홀트와 친구가 된다. 쥬얼과 제이크의 밀고 당기는 사랑 싸움은 귀엽기만 하다. "집단의 논리와 개인의 갈등을 그려 왔으며 앞으로도 그러고 싶다"는 리안 감독의 영화 지향이 잘 드러나는 영화. 26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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