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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히드의 '이라크 카드'

입력
2000.08.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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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정치를 감당하지 못해 내정에서 손을 뗀 압두라흐만 와히드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돌연 이라크를 방문하겠다고 선언, 미국과 외교 마찰을 빚고 있다.와히드는 12일 미국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이라크를 방문한 후 인도네시아를 찾은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올 여름이 끝나기 전에 이라크를 방문, 사담 후세인 대통령과 회담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1991년 걸프전 이후 가해진 유엔의 이라크에 대한 경제제재가 해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와히드의 발언은 사실상 차베스의 반미노선에 대한 동참을 선언한 것으로, 가뜩이나 차베스의 행보에 심기가 불편한 미국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은 “매우 분별없고 부적절한 일”이라면서 감정적으로 와히드를 비난했다. 이어 “방문을 자제하라는 미국의 충고에 귀기울이는 것이 인도네시아의 외교와 도덕성에 이로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올브라이트는 이어 “와히드 대통령은 아직도 해야할 일이 많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내치나 잘하라’고 비꼬았다.

와히드의 ‘이라크 카드’는 과거 비동맹 그룹의 수장국으로서 국제 위상을 회복하겠다는 외교 소신의 표명이라기 보다는 수세에 몰린 국내 정국을 돌출 발언을 통해 돌파해보려는 정치적 승부수라는 분석이 설득력이 있다. 올초 정파간 야합에 의해 대통령에 오른 와히드는 최근 권력 분점을 선언, 정파들과 화해했지만 대통령 권한을 대폭 포기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 더구나 인도네시아는 냉전후 경제·군사적으로 미국의 영향권에 포함돼 독자 외교노선을 표명할 입장이 아니다.

이동준기자

d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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