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해방 55년이 지나고 21세기 첫 광복절이 왔다. 회고해보면 우리는 해방은 되었으나 국토분단, 전쟁, 냉전체제, 군사독재, 이념대립 등을 거치면서 화해를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다.그러나 다행스럽게 새로운 출발이 가능해졌다. 이번 광복절에는 역사적 이산가족 상봉도 이루어진다. 6·15 정상회담 이후 많은 변화가 일고 있다. 특히 북한 지도층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현저하다.
한 보기로, 전국의 초·중·고등 및 대학생에 대한 조사 결과를 보면, 북한 지도층을 ‘경계하고 싸워야할 적’으로 본 사람은 작년에는 52.7%였으나, 금년 6월 말에는 16.5%로 줄었다.
한편 ‘함께 살아야 할 이웃’이라는 견해는 31.0%에서 71.3%로 올랐다.
그러나 상황은 아직 모호하고 혼란스럽다.
북한 주민에 대하여 ‘친근하게’느낀다는 사람은 3명 중 한 명 꼴이고 ‘믿을 만하다’는 반응은 5명 중 한 명 정도다.
62%는 통일이 되면 우리나라가 발전할 것이라고 보지만, ‘내가 더욱 행복해질 것이다’고 본 사람은 31%에 불과하다. 조심스럽게 추이를 지켜보는 마음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화해의 핵심은 마음의 공동체를 여는 데 있다. 이에 관해 나는 우선 속도 조절을 제안하고 싶다.
6·15 정상회담을 앞두고 많은 사람들은 과욕을 경계했다. 만남 자체가 역사적 사건이라고 했다. 그렇게 보자면 6·15 정상회담은
진정 너무 많은 성공을 일시에 거둔 셈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더 많은 요구
들이 분출하고 있다. 군축은 어떻고, 평화협정은 어떻고, 국군포로는 어떻고…. 우리의 조급합이 드러나는 것일까. 빠른 질주는 부실의 위험을 낳고 과잉
기대는 환멸의 원인이 된다. 이것은 북한도 마찬가지다.
다음으로는 동질성을 키워가자고 말하고 싶다. 그런데 그 동질성은 과연 어디 있는 것일까?
남북한의 정치, 경제, 군사, 통치이념은 사실 너무 다르다. 교육이나 역사, 종교, 예술 같은 제도도 다르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같이 한국인이다. 여기에는 추호의 의문도 없다.
긴 역사와 전통 안에서 우리는 이 정체성을 공유해왔다. 그렇다면 21세기를 맞고 있는 오늘날, 한국인의 정체성은 과연 어떻게, 무엇으로 구성되는 것일까. 이 질문을 본격적으로 검토할 때가 되었다. 마음의 공동체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풍요롭게 하는 데 있다. 이것은 핏줄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사회문화적으로 가꾸어지는 것이다.
때문에 정책이 요구되고 연구가 필요하다. 통치체제와 이념의 영향력이 결코 적다고 할 수 없지만, 그 너머에서 남북한 주민이 공유하는 바람직한 한국인상(像)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문화적으로 가꾸고 개발하는 과제가 중요하다.
여기서 성공할수록 장차 남북관계의 역풍을 막고 흡수하는 국민대중의 스폰지 역량도 커질 것이다.
남북화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북한경제의 재건이 급선무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북한체제를 국제사회에 연착륙시키는 정책도 필수적이다.
이를 통해 북한 경제가 회생할수록 통일비용은 줄어든다.
아울러 남한과 북한, 북한과 세계경제 사이의 교류와 협력의 망이 촘촘히 짜여질수록 전쟁 대신 평화가 정착될 것이며 분단의 멍에와 비용도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올해의 남다른 광복절을 맞이하여 우리가 너무 도시 깍쟁이처럼 행동하기보다는 시골의 형님 같은 너그러움과 멀리 보는 혜안을 갖자고 호소하고 싶다.
/한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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