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의 언론사 사장단은 12일 낮 12시부터 3시 30분까지 평양시 중구 목란관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오찬을 하고 대화를 나눴다.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대와 주재로 이뤄진 이날 오찬에서 북한측에서는 최태복 최고인민회의 의장 겸 노동당 과학교육 비서, 김용순 노동당 비서 겸 통일전선부장, 정하철 선전선동부 부장, 김양건 국제부장, 강능수 문화상, 최칠남 로동신문책임주필(사장), 차승수 조선중앙방송위원회 위원장 등 북한의 당·정·언론계 고위 인사 30여명이 참석했다.
남한측에서는 최학래 한국신문협회 회장, 박권상 한국방송협회 회장을 비롯해 동행중인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 등 방북 언론사 대표단 56명 전원이 참석했다. 김위원장과의 접견 및 오찬 시 나눈 이야기를 방북 언론사 사장단이 주제별로 정리한 것을 요약했다.
■김위원장
통일문제는 지금까지 양측 모두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북남 공히 과거 정권 탓입니다. 체제유지를 위햐 양측 정부가 통일 문제를 모두 이용해 왔습니다.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 결단으로 이뤄진 6·15선언 이후 많이 달라졌습니다. 남측 언론 비판도 그렇고, 야당 비판은 강하지만…남측은 관료가 그렇게 힘이 있는 것 같지 않더군요.
■방북단
서울 답방은 언제쯤 하시겠습니까.
■김위원장
적절한 시기에 답방하겠습니다. 빨리 해야 할 텐데.
■방북단
남북 정상을 시드니 올림픽에 초청할 경우 시드니에 가시겠습니까?
■김위원장
시드니에 가서 배우노릇 하는 것 보다 서울을 먼저 가야죠. 김 대통령에게 빚을 져서 서울을 먼저 가야 합니다. 남북 장관급 회담 1차 2차에서는 인사하는 수준 정도로 하고 다음 3차부터는 본격적으로 속도를 높여 나가겠습니다.
남측 언론사 사장 대표단이 100 명 정도라고 들었는데 이번에 50명이 왔습니다. 우리 언론사 사장 숫자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언론사 숫자 면에서 남측이 언론의 형 역할을 해 줘야겠습니다. 남측 언론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면 내가 남측 TV를 보기 시작한 것은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기 3주 전부터입니다.
그리고 남측 신문은 죽 보다가 8년 전부터 눈이 나빠져서 지금은 잘 안 봅니다. 남쪽 신문 활자 크기는 얼마요? 로동신문은 폰트가 얼마인가? 로동신문과 비교해서 더 작습니까?
■방북단
아닙니다. 로동신문보다 활자 크기가 2배나 됩니다.
■ 김위원장
KBS는 섭섭한 게 많지만 이젠 나무라지도 않겠습니다. 과거 관영방송이니 그랬을 것입니다. 그런데 6·15 선언 후 많이 달라졌습니다.
과거에는 본의 아니게 그랬을 것입니다. TV는 화면으로 딱딱 잡아서 보여주는 것이라서 거짓말은 안 됩니다. 그런데 남측 보도로는 내가 와인만 한 잔 먹어도 술을 많이 먹는다고 합니다. 과장을 많이 합니다. 북조선 언론도 한라산 해돋이를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위원장
노동당 규약도 고정 불변의 것은 아닙니다. 언제든 바꿀 수 있습니다. 김대통령이 북조선에 와서 당 대회를 언제 하느냐고 물어 가을쯤 할 생각이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김대통령이 당 대회를 열면 할 일이 많겠습니다라고 얘기해서 그렇다고 답변했습니다. 그런데 준비했던 당 대회가 남북정세가 급히 바뀌어 모든 걸 다시 준비하게 됐습니다.
■방북단
규약을 개정한다면 남쪽의 보안법 개정과 연계시켜 정상회담때 말씀하셨습니까.
■김위원장
아닙니다. 보안법은 남조선 문제입니다. 과거에도 규약은 고쳤으나 45년도에 만들어진 강령은 안 바꿨습니다. 그런데 이 강령은 해방 직후 40년대 것이어서 과격적 표현이 많이 있습니다. 당 간부들 가운데는 주석님과 함께 일하신 분들도 많고 연로하신 분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쉽게 바꿀 수 없습니다.
■김위원장
현대에게 개성 관광단지와 공업단지를 꾸밀 수 있도록 개성을 줬는데 이건 6·15선언 선물입니다. 그래서 서울 관광객들을 개성까지 끌어들여야겠습니다. 공업단지도 해주보다 개성에 만들면 어떻겠느냐고 했습니다.
관광 공업단지가 생기면 이것 저것 보고 사람들이 많이 몰리지 않겠느냐 이렇게 얘기를 해줬더니 정몽헌이 입이 찢어져 갔습니다. 현대는 맨 먼저 우리와 거래를 했고, 또 영감님이 1,500마리 소도 가지고 왔는데 성의를 무시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온 김에 부지를 보고 가라고 했더니 보고 갔습니다. 현대에 특혜를 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방북단
남북한에서 백두산과 한라산 관광을 100명씩 교차 관광으로 하면 어떻겠습니까? 백두산에 있는 지리학자가 한라산 백록담을 꼭 보고 싶다고 그럽디다. 그 학자는 노력영웅이라고 하던데요…
■김위원장
그럼 99명을 우리가 선택할테니 한 명은 박장관이 선택해서 100명을 연내에 교차 관광시킵시다. 여러분들은 천지의 일출을 보셨지요. 나는 한라산 일출을 보고 싶습니다. 왜 상급(장관급) 회담에서 이 문제를 제기 안했나… 용순 비서(김용순), 교차 관광문제를 추진하시오. 조직하시오.
■김위원장
저마다 다들 간다고 야단입니다. 남쪽에도 숨어있는 사람까지 치면 이산가족 숫자가 굉장할 것입니다. 이곳에도 숨어있는 사람이 많았는데 위원장(본인)이 남쪽에 간다고 하니 이젠 너도나도 가겠다고 나타납니다.
여러분들은 사장단으로 60명 정도 와서 오늘 이자리에 우리는 30명을 참석시켰습니다. 이것은 인구 비례로 한 것이오. 전금진 동지, 와서 사장들한테 술을 권하시오. 언론사가 잘 써줘야지, 상급회담 아무리 잘 해도 소용없어요.
■전금진
잘 부탁합니다.
■김위원장
청탁하지 마시오. 언론이 알아서 써야… 이산가족 문제는 준비 없이 갑자기 하면, 과거에 그런 경험이 있었는데 비극적 역사로 끝나거나 다른 방향으로 가 버릴 수 있습니다. 너무 인간적이고 동포애만 가지고 강조하면 안됩니다. 올해는 9월, 10월 매달 한번씩 하고, 내년에 종합검토해서 사업을 해 나갑시다. 내년에는 이산가족들이 집에까지 갈 수 있게 해 보겠습니다.
(스테이크가 나오자)
■김위원장
이 고기가 하늘소 고기입니다. 당나귀라고 부르던 것을 주석님이 기분 나쁘다고 하늘소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장명수 사장, 남쪽에 남존여비가 있습니까?
■방북단
네, 약간 있습니다(웃음). 북에도 남존여비가 있습니까?
■김위원장
많이 있지요. 남녀평등이란 말이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남존여비가 있다고 봐야죠. 봉건 유교 사상을 얘기하면 중국보다 한국이 셉니다. 유교 본토인 중국보다, 중국이 유교 사상을 수출한 나라에서 오히려 위세가 더 강합니다.
■김위원장
남측이 먼저 착공하세요. 그러면 즉시 우리도 착공하겠습니다. 상급 회담에서 착공 날짜를 빨리 합의하십시요. 내가 (김)대통령과 임동원 국정원장에게도 말했는데 날짜가 합의만 되면 우리는 38선 분계선 2개 사단, 3만5,000명을 빼내서 즉시 착공하겠습니다.
(오후 2시에 간부 한 사람이 김국방위원장에게 다가와 회의시간이 됐다고 보고하자…)
김위원장 회의는 내가 가는 순간에 하라고 하시오. 남측과의 사업이 회의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합니다.
■방북단
서울서 평양 올 때 북경에 갔다가 다시 돌아왔는데 무엇 때문에 돈 더 들이고 시간 더 걸리고 그렇게 해야 합니까? 곧바로 올 수 있도록 할 수 없겠습니까?
■김위원장
직항로 문제는 정부 내에서는 문제 될 것이 없고 군부가 문제인데, 군대 문제는 내가 말해야 직항로가 열리게 돼 있습니다. 큰 대표단은 직항로로 곧바로 오십시요.
남북 모두가 휘발유를 사서 쓰는데 무엇 때문에 멀리 돌아서 다니면서 중국에게 돈 써가며 굽신거리나…. 다음부터는 직접 다닐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박장관에게) 가수 이미자 김연자 이런 사람 좀 데리고 오세요.
내가 초면에 쑥스러워 이 사람들과 뭐라고 인사를 하나…. 구면인 박장관이 함께 있어야지…. 남측 가수가 평양에 오면 내가 목란관에서 시연을 보고 평가한 뒤에 큰 극장에서 인민들에게 감상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김위원장
나는 생활을 사무실에 앉아서 우울하게 보내지 않습니다. 인민 속에 들어가 노래하며 즐겁게 함께 보냅니다. 간부들을 만나면 틀거리를 합니다. 간부들을 보면 신경질이 나요. 이 사람들은 고정된 틀 속에서 잘 변화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나는 거의 지방에서 인민들과 시간을 보내는데 수영도 하고 말도 일주일에 한 두 번 탑니다. 시설 60㎞까지 달립니다. 11살부터 하루 약 8㎞ 이상씩 40~60㎞ 시속으로 말을 타 왔습니다.
■김위원장
남측의 텔레비전 대담을 보는데 KBS가 어떨 때보면 북남관계 일이 있자마자 금세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찬성이냐 반대냐 하고 얘기들을 하는데 내가 보면 북조선 실정 전혀 모르고 책만 보고 딴소리를 하더군요. 데려 오시오. 쭉 데려와서 이런 사람들이 북조선을 보게 해야 합니다. 북에 뿔난 놈들 없으니 와서 봐야지요.
■김위원장
박정희 평가는 후세들이 해야지 동참자들이 말해서는 안됩니다. 그때 그 환경에서는 유신이고 뭐고 그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소위 민주화도 무정부적 민주화가 되서는 곤란합니다.
■방북단
미국과의 수교는 언제쯤 될까요?
■김위원장
내 말 떨어지면 내일이라도 미국과 수교합니다. 미국이 테러국가 고깔을 우리에게 덮어씌우고 있는데 이것만 벗겨주면 그냥 수교합니다. 그런데 일본과의 수교 문제는 복잡합니다. 과거 문제도 있고, 청산해야 할 문제도 있지요.
일본이 부당한 해명을 요구하는데 그렇다면 명치유신때부터 따져야지요. 일본은 일제 36년을 우리에게 보상해야 합니다. 나는 자존심이 꺾이면서 일본과 수교는 절대 안합니다. 작은 나라일수록 자존심이 있어야 합니다. 영사 대사 관계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고 나는 주권국가의 명예와 자존심을 지켜나갈 것입니다.
■김위원장
대북관련 기사는 내가 다 봅니다. 경제관계는 안 읽어도 우리측 기사는 모두 읽습니다. 그런데 여기오신 46개 언론사 관련기사를 다 보려면 일주일이나 걸려야 되겠지요. 나는 언론사를 위해서 일부러 잘 보일 필요는 업다고 생각합니다.
있는 그대로 보여야 합니다. 이산 가족들이 고향 방문까지 하고 가족들을 만납니다. 그리고 우리가 쌀이 모자란다고 국제사회에 호소하고 있는 주제에 그대로 보여 줘야지 숨길 것이 없어요. 숨기면 오히려 의심을 받습니다. 우리는 같은 민족이 아닙니까. 일본 친구, 인도네시아 친구, 다른 나라 친구와는 다릅니다. 우린 진짜 한민족입니다.
■방북단
춘향전과 비천무 등 네 가지 영화를 보고 왔습니다.
■김 위원장
비천무가 뭡니까? 중국에서 촬영한 것인가요? 내가 영화 본 소감을 광 케이블을 통해서 1주일 내에 보내겠습니다. 내가 정치가가 되지 않았으면 영화 애호가나 평론가나 제작자가 됐을겁니다.
■방북단
통일 시기는 언제쯤 될까요?
■김위원장
그건 내가 맘 먹을 탓입니다. 적절한 시기라고 말할 수 있지요. 이런 표현은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들이 쓸 수 있는 말입니다.
■김위원장
나는 원래 사람을 만날 때는 어디서든 만납니다. 비행기에서도 만나고 배에서도 만납니다. 정몽헌 회장이 원산에 배를 타고 와서 내가 배에 가서 맞았지요. 배에서 불고기도 구워 먹었는데 몽헌 회장이 아주 좋다고 했습니다. 한우 고기맛이 좋다고 했는데 검증(검역)하려면 한 40일 걸릴겁니다.
■김위원장
판문점 연락사무소로 매일 신문을 넣어 주십시오. 우리가 일본을 통해서 돌아서 읽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우린 서로가 같은 민족인데 얼마나 좋습니까? 신문도 연락 사무소를 통해서 다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달러가 없어서 돈 내고는 못 봐요.
그냥 주기 어려우면 사장이 본 뒤에 손때 묻은 것을 보내주세요. 남측에서는 대외로 나가는 신문은 얼마나 됩니까?
■김위원장
광고가 없어서 KBS_TV를 내가 아주 좋아 합니다. NHK도 광고가 없어서 좋고 국제 정치를 잘 다루고 있고, 프로그램을 점잖게 보내서 보수적이어서 내가 좋아 합니다. 그러나 중국 CCTV와 러시아 TV들은 관영인지 아닌지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국가 소리를 내는 방송이 있어야합니다. 나는 NHK와 BBC를 존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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