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기업들이 각종 기부금 부담금 분담금 예치금 출연금 목적세 등의 명목으로 낸 법정준조세가 국세의 1.2배, 지방세의 20배 규모에 달했다는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조사·발표는 놀라울 따름이다.법정준조세는 기업들이 기업활동과 관련해 내는 세금이외의 부담을 말하는 것이어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다. 이는 이 땅에서 비즈니스하기가 얼마나 힘드는 일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준 것으로, ‘사업하기에 좋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정부의 말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외환위기가 어느 정도 극복되고 경기가 예상외의 빠른 속도로 회복세를 보여 기업들의 형편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해도 법률이 정한 세금보다 더 많은 돈을 ‘세금 아닌 세금’으로 내고 있다는 사실은 쉽게 이해하기가 힘들다.
전경련이 연간 매출액 1,000억원 이상인 98개 회원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개 업체당 평균 745억687만원을 준조세로 납부, 98년에 비해 12%가 증가했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76%를 차지하고 있는 교육세 농특세 등 목적세를 제외해도 1개 기업이 낸 준조세는 평균 177억2,221만원으로 전년에 비해 22.2% 늘었다.
고용보험료 사용자 부담금과 의료보험료 사용자 부담금 등 사회보장성 부담금이 33.9% 증가하는 등 분배·복지 측면에서 불가피한 부분도 있었지만, 정당후원금 같은 법정기부금이 120% 가까이 늘어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인 것은 구조조정 등으로 인원과 경비를 삭감하지 않을 수 없었던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현상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지난해 국내 기업들이 많은 수익을 올린 것은 경영개선 등 내부 요인에 의한 것보다는 금리 환율 등 외부 요소에 힘입은 바가 더 컸다는 점이고, 따라서 이익을 미래를 위한 투자에 사용하지 않을 경우 앞으로 기업경영은 상당히 어려워질 것이라는 점이다.
얼마 전 개각으로 물러난 김영호 전산업자원부장관의 걱정도 이런 맥락에서 충분히 설득력을 지닌다. 그는 “국내 기업들의 개발경쟁력이 미약한 상황이어서 내년 수출이 큰 걱정”이라며 “금융문제나 자금 조달의 어려움 때문에 기업들의 연구·개발 투자가 부실하면 수출경쟁력은 기대하기 힘들다”고 우려했다.
준조세는 기업 입장에서 보면 피할 수 없는 측면이 많고, 외부에서 보면 비교적 쉽게 자금조달을 할 수 있어 유혹이 강하다. 때문에 각종 부담금의 무분별한 신설 방지와 징수·관리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부담금 관리기본법(가칭)’을 제정하고 준조세에 대한 국회와 예산당국의 통제가 필요하다는 전경련의 주장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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