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적 사안이 소모적 정쟁의 대상이 되는 나라치고 변변한 나라가 없다. 오늘같이 첨예한 국제적 경쟁구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나 또 대외적으로 국위(國威)와 국익을 지키기 위해서도 외교적 사안의 정쟁화는 지양돼야 한다. 외교적 사안은 어디서나 초당적 뒷받침이 강조되는 것이 추세이고 상식이다.최근 여야 정치권의 ‘반미(反美)논쟁’과 이에 따른 설전 양상을 보면 우리 정치권이 제 정신이 있는 집단인가를 다시 한번 되묻게 된다. 무엇을 위한 문제 제기이며, 또 무엇을 위한 설전인지 분간할 수가 없다.
문제의 발단은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9일 기자회견에서 현 정권이 급진세력의 무분별한 반미운동을 방치하고 있다는 의혹이 있다고 주장한 데서 비롯됐다. 이에 대해 민주당의 서영훈 대표가 “이총재의 발언은 사실을 왜곡하고 한미관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반박하면서 설전양상으로 번졌다.
이총재는 ‘반미운동 방치’ 의혹의 구체적 근거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노근리·매향리 문제 등 주한미군 관련 문제들에 대해 정부가 유효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점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우리는 이같은 현실 인식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노근리나 매향리문제, 또 SOFA협정에 대한 의사표시가 어떻게 해서 반미운동으로 평가될 수 있는가. 구체적인 논증없는 문제 제기는 허황할 뿐이다. 노근리 문제만 해도 그렇다.
반세기 전 전쟁의 와중에서 일어난 일이라고는 해도 죄없는 양민들의 억울한 떼죽음에 대해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또 그 유족들에게 최소한의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것을 반미운동 차원으로 본다는 것은 시각에 문제가 있다.
마찬가지로 매향리 문제도 미군 사격훈련으로 주민들이 입고 있는 극심한 피해를 시정하려는 것이지, 그것이 곧 반미운동은 아니다. 또 SOFA협정의 개정요구도 독일이나 일본에 비해 불평등한 부분을 시정하자는 최소한의 국민된 자존심이다.
우리는 이런 일련의 요구가 결코 반미운동이라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한미관계의 장래를 위해서 이같은 비판적 시각과 민족 자존운동은 필요하다고 본다.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 1일 국무회의에서 “미국의 정책을 비판할 수는 있어도 반미로 가는 것은 잘못”이라며 “반미는 우리의 국익에 절대 도움이 안된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야당총재의 발언을 두고 조건반사하듯 반발하는 집권당의 자세도 문제가 크다. 정치권은 하루속히 백해무익한 반미논쟁을 거둬들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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