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세번째의 한국 공포 영화 '해변으로 가다'(김인수 감독)와 파격적인 누드 장면으로 제작 당시부터 화제를 불러 일으킨 '미인'(여균동 감독)이 12일 개봉한다. 어딘가 할리우드 공포와 많이 닮은 '해변…'이나 너무나 독립적이어서 소통의 여지가 없는 '미인'. 익숙함과 낯섬. 두 대척점에 서 있는 한국 영화들이다.▥ 해변으로 가다-피를 부르는 ID:샌드맨
통신 동호회 ‘바다 사랑 동호회’의 회원 여섯, 남자 셋, 여자 셋이 해변으로 놀러갔다.
일행 중 한 명이 이미 열차 안에서 목 한가운데를 찔려 죽은 것도 모른 채.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푸른 바다와 시퍼런 칼날.
‘해변으로 가다’는 ‘하피’ ‘가위’에 이어 올 여름 세번째 호러물이다.
미국에선 지난해 ‘나는 지난 여름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 ‘스크림3’로 정점을 찍은 장르이지만 우리나라에선 올해 드디어 만개하는 분위기다.
통신 동호회에서 만난 이들이 만나는 것은 처음이다. 서로 눈빛을 주고 받으며, 사랑이 무르익기도 하고, 대담한 ‘누나’ 손에 이끌려 차에서 욕망을 나누기도 한다.
그러나 차 안에서 욕망의 불을 끈 두 사람은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간다. 그들은 알고 있다.
그것이 ‘샌드맨’의 짓이라는 것을. 샌드맨은 통신에서 이상한 발언을 일삼다 강제로 탈퇴당한 누군가의 ID. 유서를 남기고 통신에서 사라진 그는 과연 죽은 것일까.
청춘 슬래셔(난도질) 영화의 문법을 철저하게 따랐다. ‘스크림’ ‘난 네가…’ 등을 통해 관객들은 눈치를 채고 있다.
첫째, 일행에서 떨어진 한 명은 제일 먼저 죽는다. 둘째, 카섹스처럼 음탕한 짓을 하면 난도질 당한다. 셋째, 맨 처음 범인으로 의심받는 사람은 결코 범인이 아니다.
해변에서 수북히 모래를 쌓고 찜질을 하고 있는 남경의 배를 가격하는 킬러, 모래 위로 보글보글 솟아 오르는 피는 이 영화의 공포가 ‘분위기’의 공포가 아닌 물리적 공포를 지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목 한 가운데, 허벅지, 정수리를 관통하는 칼날이 독특한 공포감을 조성한다.
지난해 뉴욕 뉴스쿨대에서 영화제작과 이론으로 석사 학위를 딴 후 데뷔한 김인수(33) 감독은 “갑작스러움에서 느껴지는 공포를 그려보고 싶었다.
사지를 절단하는 일종의 스플래터(Splatter) 영화라고 보면 좋겠다”고 설명한다. 감독은 “배우들이 의외로 잘했다”고 했는데,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 영화를 독창적인 호러물이라고 평가할 만한 단서는 거의 없다.
왕따, 그리고 복수극이라는 주제는 물론 살인이 일어나는 장소나 형태에 있어 전형적인 호러물의 문법을 너무나 충실히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공포의 미개척장을 개척하는 일, 공포영화의 임무가 아닌가. 12일 개봉. 오락성 ★★★, 작품성 ★★☆
▥ 미인-사랑은… 몸으로 말하는 것
‘몸이 소리 지르지 않는다. 몸이 졸음에 겨워 눈꺼풀을 꿈뻑거리며 잠들어간다. 몸이 반응하지 않는다’.
여균동 감독은 자신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미인’의 연출 소감 중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이제 모든 사랑은 몸으로 소구된다.
소유하는 사랑이 아니라 존재하는 방식의 사랑을 하라는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방식은 이제 용도폐기될 단계에 이르렀다. 모두 몸을 얘기한다.
‘세상 밖으로’ ‘맨?’ ‘죽이는 이야기’에 이은 감독의 4번째 영화는 ‘몸의 사랑’에 관한 것이다.
그가 차린 영화 식탁의 재료는 신선한 살코기다. 그러나 그의 고기 요리는 냄새로 코를, 육질로 혀끝을 자극하지 않는다.
재료만 보여주고 맛은 느낄 수 없게 만든 것은 무슨 의도인가. 배우는 한국 영화 사상 최소다.
주인공은 누드 모델(이지현), 잡지사 기자(오지호), 그리고 수시로 그녀를 불러내고 정사를 나누다가 그녀를 버리고, 남자에 의해 살해 당하는 여자의 남자 외 한 두명 뿐이다.
영화의 대부분은 옷을 벗었거나 거의 입지 않은 몸매 좋은 남녀를 비춘다. 둘은 많은 정사를 나눈다. ‘내 눈은 그녀의 사소한 것에서 의미를 찾느라 부산하다.
그리고 나는 전율한다’ ‘내 앞에 있는 그녀가 그립다’ ‘나에게 그녀는 아프다’. 이렇게 남자는 여자에 집착하고, 집착의 증거로 정사를 벌인다. 그러나 여자는 그 순간뿐 언제나 몸과 마음은 부유한다.
많은 노출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자극을 주지 않으며, 깨달음을 주지도 못한다.
우유빛의 미니멀풍 집안 꾸밈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정지된 카메라나 작은 움직임을 강조한 섹스의 움직임, 그리고 관객의 의식에 개입하는 남자의 사랑에 대한 내레이션. 사랑을 기술하는 감독의 언어는 지나치게 차분하거나 단조롭다.
혹은 지나치게 사변적이다. 몸을 몸의 언어가 아닌 두뇌의 언어로 풀어냈다. 무용가 안은미씨가 몸 연출을, 노영심이 피아노만을 사용한 영화음악을 만들었다.
그러나 포장이 고급스럽다고 내용물의 수준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5억 5,000만원으로 이같은 화면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절제된 영상이 아름답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에 던지는 사랑에 대한 단상은 단순한 드라마로 비쳐질 뿐이다.
한 감독이 말했다. “요즘 감독은 모두 철학자가 되려는 것 같다.” 12일 개봉. 오락성★★★, 작품성★★★ (★ 5개 만점, ☆은 절반, 한국일보 문화부 평가)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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