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이 중심을 잃었다. 현대 자구책 마련과 관련, 정부당국과 현대의 눈치만 살피면서 오락가락하고 있다.외환은행은 9일 현대에 대해 ‘3부자 퇴진’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가 10일 이를 사실상 번복했다.
새 경제팀장인 진 념(陳 稔)재경부장관과 이근영(李瑾榮)금융감독위원장이 “현대문제는 기본적으로 채권은행단이 자율적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밝힌 상태에서 정부와 현대 관계자들은 물론 수많은 시장참여자들이 주채권은행의 조치를 주목하고 있는데도 ‘공’을 넘겨받은 주채권은행이 갈팡질팡하며 혼선을 빚고 있는 것이다.
특히 금융노조파업을 계기로 정부가 관치금융 철폐를 선언하며 ‘자율금융’을 공언했는데도 정작 은행은 정부 눈치를 살피며 ‘타율금융’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경림(金璟林)외환은행장은 9일 기자들과 만나 “‘3부자 퇴진’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며 이는 정몽구(鄭夢九·MK)현대·기아차 회장의 퇴진을 의미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김행장은 또 “현대문제에 책임이 큰 전문경영인(가신)도 자진해서 물러나야 한다”며 가신경영진의 퇴진도 요구했다.
외환은행측은 그러나 10일 이를 번복, “‘3부자 퇴진’ 등 5월31일 대국민 약속을 현대가 지켜야 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라는 점을 재확인한 것일 뿐”이라며 “하지만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자구안 마련인 만큼 향후 더 이상 ‘MK 퇴진’문제는 거론치 않겠다”고 밝혔다.
금융감독위원회의 고위 당국자는 김행장의 9일 발언과 관련, “‘3부자 퇴진’은 정부의 입장이 아니다. 자신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사안이다”고 말했다. 김행장의 돌출발언이 일파만파를 일으키자 정부당국이 진화에 나서는 진풍경이 벌어진 것이다.
김행장은 지난 5월 취임했을 때부터 줄곧 “특정대주주와 경영진의 퇴진문제는 재무약정사안이 아니다”며 현대 3부자와 가신경영진의 퇴진여부에 대한 언급을 피해 왔었으나 9일 돌연 입장을 바꿨다가 10일 다시 재위치로 돌아온 것이다.
금융계 관계자는 “외환은행측이 아무런 대책없이 ‘MK 퇴진’문제를 거론했다가 현대차의 반발이 예상보다 거센데다 정부측도 불편한 기색을 보이자 즉각 말꼬리를 흐린 것 같다”며 “그동안 관치금융에 길들여진 은행으로서는 자율금융을 실천하기가 무척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융연구원 관계자도 “채권단의 현대 처리는 자율금융실천 여부의 시금석”이라며 “외환은행으로서는 그만큼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영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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