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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달영칼럼] 홍범식과 정인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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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달영칼럼] 홍범식과 정인보

입력
2000.08.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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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이산가족 방문단이 서울과 평양에서 상봉행사를 갖는다. 며칠 남지 않았다. 우선 100명씩이지만, 그들 하나하나가 뿌리는 눈물과 토해내는 통곡은 100권의 대하소설로도 감당 못할 고통과 감격의 대합창일 터이다.이런 일이 있기는 있는 것이다. 이런 날이 오기는 오는 것이다. 2000년 8월을 ‘통일맞이 대축전’이라는 이름으로 떠들썩하게 경축한들 크게 흡족할 일도 아니다.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고 했던 것은 광복절 노래의 첫 절이다. 경술 국치로부터 35년, 일제 강점에서 벗어난 해방의 감동이 절절한 이 노랫말은 위당(爲堂) 정인보(1893~1950?)의 지음이다.

정말 ‘흙 다시 만져’ 보고 ‘바닷물도 춤을’ 추는 또다른 감격이 해방의 날로부터 55년이 지난 날에 되풀이 된다는 것은, 비록 ‘시작의 시작’일망정 민족사의 축복이다.

연대기로서의 올 8월은 나라를 일본에 빼앗긴 국망의 날의 90주년으로도 기억된다. 29일이 그 날이다. 정부가 정하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일완(一阮) 홍범식(1871~1910)이 기념되는 것은 한달 전 ‘7월의 문화인물’이 위당이었던 것과 함께 그 뜻이 여간 깊지 않다.

일완은 1910년 8월29일 한일합방을 알리는 고종임금의 칙서를 받았을 때 나이 40의 금산군수였다. 그 전해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 이후 일본의 한국병탄 음모를 풍문으로 들을 때마다 “나라가 망하는데 구할 힘이 없다니 안타깝다. 나 또한 죽는 것이 마땅하다”고 탄식해왔던 그대로, 그는 그날로 목매 자결한다.

한일합방이라는 국망의 비보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전국의 선비를 박은식의 ‘한국통사’는 27~28명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그중 만조백관과 전국 360여 수령 등 현직(顯職)으로는 일완이 유일하다고 하고, 주 러시아공사이던 이범진을 보태기도 한다.

알려져 있는 대로 일완이 18세 성균관유생일 때 얻은 맏아들이 벽초 홍명희(1888~1968)다. 뒷날 벽초는 16세에 맏아들 기문에 이어, 아버지 일완이 순국하던 그 해에 둘째아들 기무를 낳게 된다. 그리고 이 둘째 기무는 다시 훗날 위당의 둘째 딸에게 장가들어, 벽초와 위당은 친우 이상의 사돈으로 맺어진다.

해방 이후 이 두 사돈은, 하나는 북으로, 하나는 남에서 각각 건국작업에 참여하고, 벽초는 북의 부수상으로, 위당은 6·25 때 납북되어 생사를 알길없는 상황임은 알려진 대로이다.

중요한 관점은 나라를 빼앗겼던 시절에 두 사람이 보여준 선비로서의 지조라고 할 수 있다. 벽초는 1930년대 소설 ‘임꺽정’의 신문연재를 통해, 위당은 같은 무렵 ‘5천년간 조선의 얼’ 등 불후의 문장을 통해 각각 민족정신을 지키고 고양시키는 데 진력했다.

위당을 조명하는 학술모임에서 한 학자는 이런 말로 결론을 삼았다.

“지금 우리 세대는 위당이 ‘5천년간 조선의 얼’을 발표할 당시와 거의 똑같은 정신적 위기를 맞고 있는데, 위당이 그때 30년대 지식인들을 가리켜 ‘어릿어릿하다’고 했듯이 지금의 우리 지식인들도 어릿어릿한 것이 아닌지 둘러봐야 한다.”

‘어릿어릿한 사람’은 얼빠진 사람, 꺼풀만 남은 사람이다. 그 막내 아들인 정양모 전국립박물관장은 아버지 위당을 회고한 신문기고에서 ‘다른 모든 학문적 업적을 떠나서, 진정으로 나라사랑을 실천했던 분’으로 기억했다.

일완과 위당 그리고 그 사이의 벽초를 포함해서 이 8월에 주는 메시지가 있다면 그것은 ‘공의(公義)’가 아닌가 한다. 그들은 조선조와 20세기를 잇는 마지막 선비로서 의로움을 지키려 애썼다. 때로는 목숨을 걸었고, 스러져가는 국혼(國魂)을 일깨우는데 ‘배운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다했다.

8·15에는 이산가족 상봉만이 아니라 대사면의 ‘화해’도 밀물을 이룬다. 8·25는 국민의 정부 2기가 시작되는 기점이기도 하다. 김대중 대통령은 개각후 첫 국무회의에서 ‘대화해’를 강조했다고 한다.

이산가족이 오가고, 총련도 오고, 비전향 장기수가 가도 “우리만은 왜 조국에 못가느냐”는 ‘화해 소외자’가 있다는 보도가 있다. 그들도 과감히 끌어안는 8월이었으면 한다.

/본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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