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역사적인 가족상봉을 앞두고 이산가족들과 상봉탈락자들이 불면증과 식욕부진, 초조·불안, 우울증 등 ‘상봉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대부분 60·70대인 이들은 가족생각에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불안·조급증세, 우울증을 겪다 심한 경우 건강악화로 병원신세까지 지고 있다.
50년만에 북쪽 큰아들과 상봉을 앞둔 이덕만(87)할머니는 아들을 만난다는 설렘에 밤잠을 못이루다 위암에 합병증까지 생겨 병원에 입원, 가족들이 애를 태우고 있다.
동생들 생각에 생병이 다 났다는 김준섭(66)씨는 “최종 선정자 발표때는 하도 신경을 곤두세워 3일간 대소변을 못봐 응급실에 실려갔다”며 “잠을 청해도 고향과 동생모습이 떠올라 3시간 밖에 못자고 항상 초조·불안하고 조급증에 시달린다”고 애태웠다.
아들과 누나를 만나러 방북하는 박관식(69)씨는 “지난달부터 방북단에 선정될 수 있을지, 아들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하고 선물은 뭘 할지 걱정이 돼 수년간 끊었던 담배를 하루 2갑씩 피우고 있다”며 불안증세를 호소했다.
상봉이 좌절된 이산가족은 허탈감과 울화병 등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동생상봉이 좌절된 김재호(65)씨는 “호적정정까지 신청했는데 못온다니…. 불안하고 살 맛이 안난다”고 호소했고 방진관(91)옹은 “너무 허탈해 허리병이 도졌다”고 말했다.
서울중앙병원 홍진표 정신과 교수는 “수십년간 바라던 일이라도 예상하지 못한 시기에 갑작스럽게 이뤄지면 큰 정신적 충격과 스트레스를 주게 된다”며 “스트레스 조절중추의 자극으로 가슴이 두근거리고 초조·불안해지며 수면 및 감정조절 장애현상이 일시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대병원 김철호 내과 교수는 “감정이 지나치게 격해지면 심장마비나 중풍, 장기기능 이상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며 “억지로라도 수면과 식사 등 생활습관을 유지하고 감정을 억제해야 건강한 모습으로 가족을 상봉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배성규기자 vega@hk.co.kr
■북측에도 장이윤(張二允)씨처럼 안타까운 이산가족이 있었다.
15일 고향방문단의 일원으로 서울에 올 예정인 북한의 문병칠(68)씨의 노모 황봉순(90·강원 고성군 죽왕면 인정1리)씨가 아들의 생존을 확인한지 사흘만에 숨진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딸 문정자씨(59)에 따르면 황 할머니는 지난달 16일 북에서 통보한 이산가족상봉자 명단을 통해 큰아들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문씨는 “치매환자인 어머니가 소식을 접한 뒤 한때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기력을 회복했다”면서 “그러나 사흘뒤인 19일 갑자기 정신이 혼미해지며 ‘병칠이를 보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뒀다’고 말했다.
그는 또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을 알면 오빠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냐”며 “오빠를 기다렸던 어머니의 넋을 위로하기위해서라도 오빠가 꼭 왔으면 좋겠다”고 울먹였다.
황 할머니는 1950년 당시 5남매중 맏이로 춘천농고에 재학중이던 병칠(당시 18세)씨가 의용군으로 징집된 뒤 50년동안 생존 여부를 모른채 살아왔다.
북측이 8일 우리측에 통보한 상봉확정자 명단에는 아들 문씨의 상봉 대상자로 어머니인 황할머니가 기록돼 있다.
통일부 관계자는 “예비후보 200명에 대한 생사확인 작업을 거쳐 지난달 26일 명단을 북측과 교환했으나 황 할머니의 사망을 알지 못했다”며 “처음 발생한 사례인 만큼 북측에게 사망사실을 통보할 지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곽영승기자
yskwa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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