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42) 감독의 영화에서 엽기는 ‘본능’이다.저 밑바닥에 자리잡은 저열하고 잔인한 본능. 그 본능은 가학과 자학의 끔찍한 물리적 묘사로 나타난다.
여자는 남자가 떠나려 하자 낚싯바늘을 자기 성기에 집어넣어 당기는 자해를 하거나(‘섬’), 아니면 꽁꽁 언 고등어로 남자를 찔러 죽인다(‘야생동물보호구역’).
수갑을 차고 수장(水葬)당한 남자는 자신의 손목을 자르고 탈출한다.
할리우드 스릴러나 공포물의 ‘뒤집기’이다.
관객은 자신들이 피해자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서가 아니라, 자신이 가해자가 된 듯한 느낌에 구역질을 한다.
그래서 오히려 더 몸서리쳐지는 신체 훼손 행위에서 김기덕이 노리는 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이다. 할리우드의 정신병적 징후와는 차별성을 갖는다.
“사랑을 하면 이런 행동을 감행할 만큼 극단적인 심리를 품을 수도 있다. 심리의 사실적 표현이다. 우리는 그것을 통해 타인을 이해할 수도 있다.”
‘단절’이야말로 김기덕 영화에 있어 엽기적 행위의 이유이다.
내가 살아온 시간들을 이해 못하는 감정적 태도들, 이를테면 ‘나는 100% 마음을 주는데, 너는 1%도 안주는’ 것에 대한 공격적 심리가 모여 분출하는 가학이다.
그것은 충동적이다. 등장인물들은 처음부터 생각하고 있다 행동에 옮기지 않고 순간적으로 저지른다. 이때 몸은, 특히 성기는 가장 효과적이고 충격적인 가학의 재료가 된다.
그 충격이 지나가고, 인물을 받아들일 때 그의 엽기는 ‘심리’로 받아들여진다. 침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섬뜩한 심리를 보고 올해 베니스영화제(9월 1~10일)가 ‘섬’을 본선 경쟁작으로 받아들인지도 모른다.
김기덕에게 엽기는 ‘증오’이기도 하다. 시대와 사회의 억압에 대한 폭발과 공격심리. 그 끝은 어디인가.
증오를 피하지 말고 넘어가 보자며 준비하고 있는 ‘수취인 불명’. 혼혈아, 상이군인의 아들, 월북자의 딸과 그의 부모들은 세상과 서로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차 있다.
증오는 혼혈아에게는 자신의 존재부정으로 자살을, 어머니에게는 그 자식을 다시 자신에게 넣어 버리는, 시체를 먹는 행위로 나타난다.
“일제식민지와 한국전쟁의 기억과 상처야말로 아직도 지울 수 없는 우리 사회 엽기의 생산재료이다.
지금의 엽기문화 역시 여기서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누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나.”
때문에 그의 엽기는 ‘저주’스럽다. ‘영화에서 엽기는 가짜’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그의 비참하고 사실적인 자학은 고통스런 역사의 기억이고, 다시는 마주하기 싫은 것이다.
차라리 더 끔찍할망정 정신병적 행위이거나 우리 현실에는 전례가 없는 할리우드의 ‘스크림’ ‘양들의 침묵’, 그것을 모방한 ‘가위’나 ‘텔 미 썸딩’이 편하다.
그러나 김기덕은 그들의 심리에 영합하지 않고 잔인하게도 그것이 여전히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기발함과 코믹성으로 젊은이들 사이에 확산되는 엽기는 뭔가. “그 역시 기성세대에 대한 부정이고, 그들이 만들어 놓은 비열하고 끔찍한 인간과 세상에 대한 야유일 것이다.”
■한국영화에서의 엽기
엽기는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잔혹하거나 역겨운 행위를 말한다.
엄밀히 말해 귀신이 사람에게, 동물이 사람에게 가하는 끔찍한 행위는 엽기가 아니다.
그래서 귀신이 나오고 천년 묵은 여우가 등장하는 ‘월하의 공동묘지’ ‘원녀’ ‘천년호’는 일종의 샤머니즘이다.
한국영화에서 리얼리즘적 엽기는 김기영 감독에게서 처음 나타났다. 독특한 스타일리스트인 그는 영화 ‘하녀’ ‘충녀’ ‘화녀 82’ ‘육식동물’에서 악녀(팜므 파탈·femme fatale)를 등장시켰고, 기존의 호스티스물과 청춘물을 자학적 세계로 채웠다.
때론 키치(kitsch·저급)적이고, 코믹하지만 거기에는 막 생성하는 도시 중산층 가정과 성을 매개로 신분상승을 꿈꾸는 하층 여자의 충동이 있었다.
평론가 김소영(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은 그것을 ‘근대적 욕망’이라고 말했다.
‘화녀 82’에서는 밥에 쥐를 넣어두고, 쥐약으로 정부의 아들을 죽이고, 살인으로 위장하기 위해 시체를 난자한다.
아니면 느닷없이 여자가 어항에서 금붕어를 꺼내 산 채로 고추장에 찍어 먹는다든가, 냉장고에 넣어둔 아기 시체를 보여준다.
이런 충격적 모티프들과 돌출적 표현과 소품, 그로테스크한 영상, 폐쇄된 공간으로 영화는 돈과 성의 충돌과 결핍의 비극을 드러낸다.
위의 영화들이 실제 사건을 소재로 했다는 점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김기영의 판타지적 엽기는 1990년대 김성홍의 ‘신장개업’과 김지운의 ‘조용한 가족’에 의해 부활한다.
자장면에 인육을 넣고, 섬뜩한 집단 무의식으로 저지르는 연쇄살인의 엽기를 코믹한 캐릭터와 기발한 상황연출, 해프닝을 통해 웃음으로 이끈다.
다분히 할리우드와 접목된, 한국 관객들의 기호에 맞춘 것이긴 하지만 그 속에는 치열한 경쟁, 중산층의 몰락과 불안, 그에 따른 분노가 숨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대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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