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성찬이기 십상인 연출의 변 대신, 그는 지난 2월부터 8월까지 공연 준비 과정을 팸플릿에다 무미건조하게 차근차근 기록해 놓았다.‘달빛 속으로 가다’를 성황속에 공연한 극단 비파의 대표·연출가 김철리(46)씨. 그의 행보는 이 시대 연극의 입지가 실려 있다.
넓은 동숭아트센터대극장 공간을 그는 사실적으로 건너 간다. 매체도, 언어 유희도, 톡톡 튀는 감성도 없다.
그러나 동숭아트센터 대극장 1층 485석이 거의 차는, 작은 이변이 연출됐다. 짧은 공연 기간(2~8일)이었지만, 관객은 그가 만든 무대의 맛을 놓치지 않았다.
첨단 어법 아니면 자극 경쟁으로 흐르는 대세는 안중에 없는 듯, 담담하게 사실주의적 어법으로 삶과 죽음을 헤쳐나간 무대. 그의 표현을 빌면, “안 하던 짓 나와야 연출 잘 한다고 하는” 요즘 연극 풍토를 정면으로 거슬렀는데도.
1995년 그가 만든 극단 비파라는 말부터가 사실 삐딱했다. 아무 유파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뜻의 비파(非派)다.
그 푸른 뜻을 덥석 반긴 것은 그러나 IMF 한파. 단원의 생계를 책임진 대표로서 그는 나름의 대책을 생각해 냈다.
다음 작품을 일찌감치 반년 전에 알려준다.
월급이라는 이름이 민망스러울 정도의 액수가 지급되는 단원(8명)들이 향후 스케줄을 각자 세울 수 있는 시간을 주기 위한 배려다.
최저 생계조차 보장받기 힘들어진 현실에서 그가 취할 수 있었던 합리적 선택이다.
지역 청소년 연극제 심사위원 참석을 요청하는 전화에 인터뷰가 끊겼다.
그러나 난색. 당장 연출가로서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펼쳐지는 뮤지컬 ‘듀엣’의 리허설을 지켜 봐야하는 것은 물론, 서울연극제 개막 무대인 ‘바다의 여인’에서는 출연 배우로 8일부터 연습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월간 한국연극지에 ‘세계의 연출가들’을 번역 게재하고 있다.
그의 극단 비파는 다음 공연작으로 이오네스코의 ‘의자들’, 셰익스피어의 ‘타이러스 앤드러니커스’ 등의 준비에 들어 간다.
수년 전부터 상연 가능성을 가늠해 왔던 작품들이다. “이제, 내 연극 시작”이라고 웃는다. 1998년부터는 연극협회이사, 연출가협회 부회장을 맡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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