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이에게 아픈 에미의 모습을 보여줘서는 안되는데….”50년만에 돌아올 북쪽 아들과의 상봉을 손꼽아 기다리던 이덕만(87) 할머니(본보 7월17일자 1면 보도)가 위암 말기 환자로 밝혀져 주변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특히 8일 북측이 보낸 이산가족 방문단 명단에 아들 안순환(65)씨가 포함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가족들은 “다행스러운 일이긴 합니다만 50년만에 이루어질 첫 만남이 영원한 이별이 될 수도 있겠네요”라며 탄식했다.
지난해 9월 위암 판정을 받은 이 할머니는 이산가족 상봉 후보자 명단이 발표된 지난달 16일부터 설렘에 밤잠을 설쳤다. 아들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미음도 제대로 못넘기던 이 할머니는 ‘순환이가 올 수 있을는지’라며 애태우다,
급기야 같은달 30일 위암 합병증으로 신장에 이상이 생겨 서울 중앙병원에 입원했다. 고령 때문에 수술이 불가능해 대증요법밖에는 달리 치료방법이 없는 상태.
“순환이한테 쌀밥도 지어주고 생일상도 차려주려면 밥 많이 먹고 이제 일어나야지.” 연신 빛바랜 사진첩만 어루만지던 이 할머니는 “순환이가 키도 작고 입맛도 까다로워 타지에서는 잘 못견딜 줄 알았는데 이렇게 살아 돌아와줘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또 “전쟁통에서 어떻게 살아났을까?” “무슨 일 하면서 살고 있을까?”라며 육십줄에 접어들었지만 기억속에는 ‘열다섯살 꼬마’인 아들의 근황을 궁금해 했다.
이 할머니는 그러나 자신의 병이 얼마나 위중한 지를 모르고 있다. 가족들이 병세 악화룰 우려해 아직까지 병명을 알리지 않았기 때문. 아들 민환(59)씨는 “형님 만나 뵙기가 미안합니다”라면서 “어머니를 건강하게 모셨어야 했는데…”라고 울먹였다.
막내아들 연환(51)씨는 “어머니가 평소 ‘순환이가 그리워 화병이 생겼다’고 말씀하시더니 결국 몸져 눕고 마셨습니다”라며 착잡해했다.
가족들은 특히 순환씨의 생일이 북측 방문단이 서울을 떠난 다음날인 19일이라 50년만에 고향을 찾은 순환씨에게 생일선물 대신 큰 슬픔만 안겨주게 됐다며 안타까워했다.
아들을 기다리며 50년 동안 이사도 안가고 지켜온 경기 하남시 집에 순환씨를 데리고 가 하룻밤을 안고 자는 것이 할머니의 소망이다.
김태훈기자
oneway@hk.co.kr
■ 수절 50년 유순이씨
“… ….”
50년 신고(辛苦)의 세월을 수절하며 남편을 기다려온 유순이(70·서울 양천구 신월7동)씨는 8일 8·15 이산가족 북측 상봉자 최종명단에서 남편 김중현(68)씨가 포함돼 있지 않다는 소식을 듣고 한동안 아무 말도 못했다. 애꿎은 TV화면을 바라보며 눈이 시뻘겋게 충혈될 때까지 눈물을 쏟아냈다.
“영감이 오면 50년 세월을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었는데…. 살아 생전에 만날 수 있을 지 모르겠네.”유씨는 한국전쟁 발발 직후 결혼 6개월만에 3개월된 아기를 뱃속에 넣은 채 북한 의용군으로 차출된 남편과 생이별을 했다.
이후 시부모를 모시고 어린 시동생 셋과 외아들을 키우며 온갖 고생과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유씨.
그는 지나간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는지 넋을 놓은채 베란다로 나가 먼 하늘만 바라보았다. “혹시나 만날까 기대했는데 지금은 아무 생각도 안나네. 나중에라도 만나게 될 기대를 해야 할지….”
유씨가 홀몸으로 갖은 고생을 하며 키운 유복자 김영우(49)씨도 명단확인을 위해 집에 들렀다 아버지가 빠진걸 알고는 아무말도 없이 집밖으로 나갔다.
“아버지가 살아 계시다는 소식에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만나면 장성한 두 손주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김씨는 “언젠가는 볼 수 있게 아버지께서 건강했으면 하는 바람 뿐”이라고 말했다.
눈물자국이 선연한 얼굴로 고개만 젓던 유씨는 “나도 나지만 오빠, 형을 만날거라고 멀리 시골서 올라온 시누이와 시동생도 안됐다”면서 “살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만도 다행”이라는 말로 애써 슬픔을 달랬다.
정녹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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