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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워치]뇌염모기가 뉴욕에 간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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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워치]뇌염모기가 뉴욕에 간 까닭

입력
2000.08.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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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 속 나라 안팎 뉴스 가운데 모기(蚊) 얘기가 눈에 띈다. 몇년 전부터 휴전선 부근 경기 북부지역에 크게 늘어난 말라리아 환자가 강원도에서도 격증했다고 한다. 또 미국 뉴욕 등 동북부 여러 주(州)에 지난해 여름에 이어 뇌염모기 방역비상이 걸렸다는 뉴스를 국내 언론이 크게 다루고 있다.굵직한 정치·경제 뉴스에 비해 모기처럼 하찮은 기사로 치부할 수 있지만,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문제점을 발견한다. 특히 뉴욕 뇌염모기 소동을 전한 국제 뉴스 보도에서 우리 언론의 병폐인 맹목적 추종자세가 두드러진다.

80년대초 사라졌던 말라리아가 다시 등장한 원인은 북한 농촌이 피페해 피를 빨 가축이 줄어 뇌염 모기가 남하한 탓이라는 추정이다. 얼핏 그럴 듯하다. 그러나 북한 모기의 영향은 크지 않고, 잇단 홍수와 기후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반론이 설득력이 높다.

유엔환경계획(UNEP)등 국제적 연구기관들도 지구 온난화에 따라 말라리아와 같은 열대성 전염병이 북반구 전역에 확산되고 있다는 경고를 내놓고 있다. ‘북한이 말라리아를 퍼뜨린다’는 주장이 없는 것은 다행이지만, 북한 요인만을 강조한 보도는 시각이 편협하다.

뉴욕의 뇌염모기 소동에 ‘바이러스 테러 가능성’따위를 거론한 보도는 한 마디로 수준이하다. 나라밖 뉴스를 더 넓은 안목으로 봐야할 터인데, 사정은 오히려 거꾸로다.

뉴욕의 소동을 국내 말라리아 확산보다 더 큰 뉴스로 다룬 것은 문명과 부(富)를 상징하는 도시에서 일찌기 없던 사태이니 그럴만 하다고 치자. 그러나 사태의 원인과 의미를 제대로 따지는 노력은 없이, 황당무계한 ‘이라크의 생물학 무기 테러’설에나 관심두는 것은 천박하다. 우물안 개구리 정도가 아니라, 제 돈과 정력을 들여 남의 장단에 놀아나는 꼴이다.

뇌염 바이러스 테러설은 사실 어처구니없다. 지난 해 미국 동부 4개 주에서 60여명이 발병해 7명이 숨진 뇌염의 원인 바이러스는 당초 치사율이 훨씬 높은‘세인트 루이스 바이러스’로 추정됐다. 그러나 이 바이러스에 안전한 까마귀와 왜가리 등 조류가 떼죽음한 원인을 분석한 결과, 아프리카와 중동· 호주에서만 발견된 ‘웨스트 나일 바이러스’로 밝혀졌다.

이게 어떻게 뉴욕까지 전파됐는지 논란되는 상황에서 영국 데일리 미러와 주간 뉴요커 등 선정적 대중지가 테러 가능성을 보도했고, 이를 CIA 등 정부 관계자들이 뒷받침했다.

근거는 오로지 이라크가 생물학 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낡은 의혹 뿐이다. 그러나 ‘나일강 서쪽’이란 바이러스 명칭이 주는 연상효과는 그럴 듯 했다. 우리 언론도 여기에 덩달아 춤춘 것이다. 고작 7명을 숨지게 한 생물학 테러를 이라크가 무슨 목적과 재주로 감행했는지에 관한 당연한 의문은 무시됐다.

유엔환경계획과 하버드대 등의 전문가들은 뉴욕 뇌염도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상이변으로 폭우를 동반한 허리케인과 고온건조한 날씨가 이어진 탓으로 보았다.

바이러스 전파 경로는 조류 이동과 잦은 해외여행 등 숱하다. 또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 전세계 탄소 배출량의 25%를 내뿜는 미국을 비롯해 선진국의 화석연료 과소비란 사실을 지적한다. 뇌염 소동은 결국 자업자득이란 얘기다.

그러면 황당한 ‘이라크 테러설’은 왜 나왔을까. 뇌염모기 소동이 한창일 즈음, ‘크리스천 에이드’같은 단체들은 1인당 탄소 배출량이 후진국의 수십배인 선진국들이 가뭄과 홍수 등 기상이변에 따른 후진국의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피해가 후진국 외채규모보다 훨씬 크다는 계산과 함께 외채탕감과 연결지었다. 외채문제를 논의할 IMF 총회를 앞둔 때였다. 테러설은 이런 논란의 초점을 흩뜨리려는 흑색선전 성격이 짙은 것이다.

국제 문제를 굳이 뒤집어 보자는 얘기가 아니다. 눈을 크게 뜨고, 세상을 바로 보아야 한다. 대통령까지 나선 ‘반미’논쟁도 편협한 인식을 벗어나, 넓은 세상의 논의를 바탕 삼아야 할 것이다.

강병태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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