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현대문제에 대한 조기처리를 촉구하면서 현대가 초긴장상태에 돌입했다.현대는 9일 오전까지만 해도 채권단이 “19일까지 자구안을 만들어오라고 했다”며 느긋한 입장이었고 정몽헌(鄭夢憲)현대아산 이사회회장을 포함한 현대 수뇌부들은 판문점을 통해 북한을 방문하는 등 여유를 부리고 있는 처지였다.
그러나 이날 오후 김대통령으로부터 현대문제를 주내에 해결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현대는 “갑자기 무슨 일이냐”며 몹시 당황하는 분위기다.
더욱이 현대문제의 ‘열쇠’를 쥐고 있는 정회장과 ‘가신그룹’으로 총참모격인 이익치(李益治) 현대증권회장, 김윤규(金潤圭) 현대건설사장까지 몽땅 북한에 머물고 있는 상황. 단지 부사장급인 김재수(金在洙) 구조조정위원장만이 홀로 사무실을 지키고 있다.
현대는 김재수 위원장 주재로 긴급 간부회의를 열어 김대통령과 정부의 의중을 파악하는 등 정신이 없는 상황이지만 “정부가 정몽헌 회장이 없는 틈에 급습한 것 아니냐”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편 현대 내부에서도 현대사태가 5개월 이상 지연되면서 지칠대로 지쳐 있고 현대건설의 유동성 위기를 더이상 피할 수 없다는 절박감이 돌고 있다. 여론 역시 현대에 점차 등을 돌리고 있고 시장도 현대사태 때문에 바닥을 기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여유를 부릴 처지가 아니라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이에 따라 현대는 최근 정부의 의중을 저울질하면서도 채권단 요구에 부응, 부분적으로 양보 의사를 내비쳐왔다.
정부와 채권단은 현대에 대해 현대차 계열분리 강도높은 자구계획 기업지배구조개선 3개항에 대한 확실한 방안을 마련하라고 줄기차게 요구해왔다.
현대측은 이에 대해 사태의 발단인 계열분리 문제와 관련, 정주영(鄭周永) 전명예회장의 자동차지분 9.1%에 대해서는 매각에 준하는 방안, 혹은 매각까지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 관계자는“정전명예회장과 지분매각에 대한 상의를 했으며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다”고 말해 입장 변화를 시사했다.
자구계획에 대해서도 현대측은 아직 정몽헌(鄭夢憲) 회장의 보유주식 처분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현대사태의 ‘핵’인 현대건설이 보유한 계열사 주식을 일부 팔아치운 상태고 앞으로도 추가 매각할 계획을 갖고있다.
그러나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관해서는 현대측의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정몽헌 회장이 9일 방북에 앞서 이익치 현대증권회장에 대해 “할 일이 있다”고 언급한 데 이어 이회장도 퇴진할 의사가 없음을 시사해 채권단과 이견을 드러내고 있다.
조재우기자
josus62@hk.co.kr
■정몽헌회장 인터뷰
"자구계획 이행 압박 잘 모른다"
정몽헌(鄭夢憲)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은 8일 계동사옥에서 기자들과 만나 정부와 채권단이 요구하고 있는 자구계획 이행 압박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사항”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채권단이 자구계획안 제출을 요구하고 있는데.
“내가 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이번 방북에서 가장 역점을 두는 것은.
“올 6월말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과 합의한 사업내용을 보다 구체화할 계획이다. 새롭게 논의할 내용은 없다.”
-금강산 관광사업은 어떻게 확대할 계획인지.
“이번에 금강산 경제특구나 금강산 밸리 조성 등에 대한 합의서를 받아올 생각이다. SOC(사회간접자본)사업 등에 대한 포괄적인 합의서를 작성, 서명하고 구체적 수행방안에 대해 북한측과 폭넓게 논의할 예정이다.”
-김국방위원장과의 면담 계획은.
“가봐야 알겠다.”
이익치(李益治)회장과 함께 가는 이유는.
“북한에서 할 일이 있다.”
윤순환기자
goodman@hk.co.kr
■이익치회장 인터뷰
"오해 서서히 풀려‥소임 다할뿐"
이익치(李益治)현대증권 회장은 8일 방북하기에 앞서 임진각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자신의 퇴진문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_정부와 채권단에서 이회장 퇴진론이 대두되고 있는데.
_“왜 그런 얘기가 나오는지 모르겠다. 맡은 소임만 다할 뿐이지 다른 것은 생각해 본적이 없다.”
_최근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건설, 중공업에 있을 때는 그 일에만 전념했다. 현재는 증권 일만 열심히 하고 있다. 지금은 외자유치 문제가 가장 중요하고 그 일에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_용퇴할 의사는.
“주총 등 일정이 필요한 것 아니냐. 상식적으로 판단해 달라. ‘큰 그림’이 중요하다.”
_개각 이후 정부·채권단의 요구가 달라질 것으로 보는가.
“나는 모르는 일이다. 그룹 일은 구조조정위원회에서 하고 있다.”
_정부와의 관계가 매끄럽지 않다는 얘기가 있는데.
“한국 경제에 일익을 담당했던 훌륭한 분들이다. 개각전 경제팀과는 이견이 있었지만 모든 분들이 나라 경제에 주춧돌을 놓은 훌륭한 분들이었다.”
윤순환기자
goodm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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