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을 알아보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50년의 헤어짐은 너무도 길고 잔인했다. 꿈길에서나 만나던 아들이 이제 칠십객이 돼 어머니를 찾아오는데 어머니는 아들을 알아보지 못한다.
8일 충남 아산시 탕정면 이종덕(63·농업)씨는 둘째형 종필(69)씨가 북측 이산가족 상봉단원으로 온다는 소식을 노모 조원호(99)씨에게 알려주느라 무진 애를 썼다.
어머니 귀에 대고 “종필이 형님이 온대요, 어머니”라고 연신 소리쳤다. 그러나 20년 가까이 치매를 앓으면서 귀까지 어두워진 노모는 “뭐라고?”라며 되물을 뿐 아무 표정이 없다. 종이에 써 보여주기도 했지만 못알아보기는 마찬가지였다.
“오빠를 만나려고 100세까지 사신 것 아니에요? 제발 정신 차리시고 오빠를 만나셔야죠. 아버지도 전쟁 후 홧김에 매일 술 드시다 돌아가셨는데….” 딸 종완(66)·종혜(56)씨 자매는 어머니의 앙상한 손을 부여잡고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노모 조씨는 북쪽에서 찾는 남쪽 가족 중 최고령자.
종덕씨는 “형님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면 어머니가 뛸 듯이 기뻐하실 텐데…. 어머니가 형님을 만나서 맑은 정신이 돌아와 얼싸안는 모습을 보면 소원이 없겠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오빠는 어릴 적부터 수재 소리를 들을 정도로 영특했고 대전공립학교에서도 줄곧 1등을 차지해 부모님의 사랑을 독차지했다”고 회상한 종완씨는 “전쟁 전 할아버지 회갑 때 찍은 가족사진이 딱 1장 있는데 오빠에게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종덕씨는 둘째형 종필씨가 대전공립중학교에 재학중이던 1950년 전쟁 와중에 실종되고 이어 큰형 종우(당시 26세로 국민학교 교사)씨도 행방불명된 뒤 57년 아버지마저 별세하자 어머니를 모시며 아버지와 두 형의 제사를 지내왔다.
아산=전성우기자
swchun@hk.co.kr
■오형재 시립대교수
"형님詩속에 영원하실 부모님"
“늙지 마시라 더 늙지 마시라 어머니여, 세월아 섰거라 통일되어 우리 만나는 그날까지라도…. 검은 빛 한오리 없이 내 백발 서둘러 온대도 어린날의 그때처럼 어머님 품에 얼굴을 묻을 수 있다면…. 그 다음엔 내 죽어도 유한이 없으리니…. 가시밭에 피흘려도 아프지 않으리….”
8일 오후 8·15 가족 상봉을 위한 북측 최종명단에 둘째형이자 북한의 계관시인인 오영재(65)씨가 포함됐다는 소식을 접한 오형재(63·서울시립대 산업공학과 교수)씨는 연신 눈물을 흘리며 형님이 쓴 ‘늙지마시라’는 시를 나지막이 읊조렸다.
16세 때이던 1950년 전남 강진 고향마을에서 인민군으로 끌려간 영재씨는 89년 ‘김일성상’을 받은 북한의 대표적 시인.
오교수는 “형님은 부모님을 그리며 시를 쓰셨지만 정작 부모님은 10년 전과 5년 전에 세상을 떠나셨다”며 “형님께 드리려고 가족앨범을 만들기로 했는데 자식 볼 낯이 없다며 평생 사진찍기를 거부하신 어머니의 사진만 없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오교수는 “북한 형님과 한남대 수학과 명예교수인 맏형(68), 홍익대 조형학과장인 동생(60), 사업가인 막내 동생(57) 등 5형제가 50년만에 한자리에 모여 통일을 준비하는 의미있는 모임이라도 하나 만들어야겠다”고 감격해 했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아나운서 이지연씨 "오빠 오시면 성묘먼저…"
"오빠가 오시면 먼저 전북 군산에 있는 부모님묘소를 찾아 성묘하고, 내가 근무하는 방송국에도 함께 가고 싶어요..." 지난 83년 전국을 울음바다로 만들며 이산의 아픔을 느끼게 한 KBS 이산가족찾기 생방송 진행 아나운서 이지연(52.여)씨는 8일 `8.15 이산가족상봉 서울방문단'에오빠 래성(68)씨가 포함됐다는 통보를 받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이같이 말했다.
이씨는 "우리 가족들은 오빠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거의 매주 만나 오빠와얽힌 추억을 되새기며 이야기꽃을 피운다"면서 "특히 맏언니(이점순.76)는 `이번에못보면 다시 못볼 것'이라며 학수고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또 "우리 가족들은 오빠를 위해 부모님 생전의 모습과 4자매의 사진들을모아 가족앨범을 꾸몄다"면서 "몇일 전에는 부모님 묘소를 찾아 묘비에 오빠의 이름이 크게 새겨져있는 것을 찍어 앨범에 꽂아두기도 했다"며 즐거워했다.
그는 "어제 귀순시인 김재호씨가 운영하는 음식점에서 귀순자 11명을 초대해 식사를 했는데 그분들이 미 달러와 엔화, 옷가지와 약품, 시계 등을 준비하라고 했다"면서 "우리 4자매는 오늘 오빠에게 줄 선물을 사러 쇼핑을 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씨는 오빠 래성씨에게 줄 선물로 순금 3돈짜리 행운의 열쇠를 준비했으며, 큰언니는 올케에게 줄 금팔찌 10돈, 셋째언니는 옷가지들을 각각 준비했다고 귀띔했다.
이씨는 "오빠와 헤어질 당시 세살이었기 때문에 오빠의 얼굴이 기억나지는 않는다"면서 "요즈음은 초로가 돼있을 오빠의 얼굴을 그려보는 재미로 산다"면서 8.15이산가족 상봉때의 벅찬 해후를 기대했다.
그는 이어 "오빠를 짧은 기간동안 만나고 다시 보내면 가슴이 아파 견디기 힘들겠지만 가족들의 생사를 확인하지도 못한 사람들도 많고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비하면 그래도 나는 행복한 편"이라고 수줍게 웃었다.
(서울=연합뉴스) 김종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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