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 납량 분위기에 편승해 오락 프로그램들이 빠지지 않고 들고 나오는 메뉴는 ‘빙의’(憑依, 영혼이 옮겨 붙음)이다.오락 프로그램들이 빙의 현상에 관한 종교적 해석과 이해를 뒤로 한 채 흥미 위주로 무분별하게 다루는 것도 문제지만, 방송의 기본적 윤리의식마저 의심케 하는 제작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빙의' 프로그램 무분별한 제작에
대표적 프로그램은 SBS ‘백지연의 뷰티플 라이프’. 심령의 실체를 파헤친다며 무속인을 매회 등장시켜 ‘귀신 찾기’ 게임을 줄기차게 내보낸 데 이어 지난달 9일과 30일에는 성암과 정음 등 두 스님까지 출연시켜 퇴마(退魔) 시연장을 벌였다.
문제는 TV에 단골로 출연하는 이 스님들이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제작진 스스로 판단하면서도 방송한 점이다.
방송이 나간 이후 이들의 연락처를 묻는 시청자들의 요구가 쏟아지지만 제작진은 일체 이 스님들의 소재를 가르쳐 주지 않고 있다.
제작진이 밝힌 이유가 가관이다. “피해를 봤다는 항의 전화도 있고, 우리도 이 문제에 대해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앞으로의 피해 발생을 막기 위해서다”라는 것이다.
재미삼아 방송은 하지만, 책임은 지지 않겠다는 뜻이다.
지난해 SBS는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성암 스님을 방송한 후 피해자로부터 많은 항의를 받았다.
더군다나 당시 방송된 퇴마 현장은 성암 스님 쪽에서 촬영해 보내 준 장면이었다. 그럼에도 지난달 9일 ‘뷰티풀 라이프’ 에서 그 장면을 다시 내보냈다.
문제가 있는 내용을 재탕하고는 ‘나 몰라라’ 한 것이다. 방송 이후 항의전화가 잇따르자 “단지 이런 현상도 있다는 것을 보여줬을 뿐 맞고 틀리다는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다”며 발뺌하고 있다.
성암 스님이 있는 원효정사의 한 관계자는 “방송국에서 자기네들끼리 알아서 퇴마 장면을 재탕, 삼탕으로 내보낸다”고 말했다.
민감하고도 복잡한 정신적 현상인 ‘빙의’에 관해 오락 담당자들이 얼마나 안이한 제작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한, 정음 스님은 자신이 법왕종에 소속돼 있다고 하나, 이 종단은 국내 대부분의 불교 종단이 모인 ‘한국불교종단협의회’에도 가입돼 있지 않다.
‘뷰티플…’ 팀은 그래도 ‘대한불교 정음사 주지’라고 버젓이 소개하고 있다. 이들은 스님도 모자라 퇴마 목사와 퇴마 신부도 현재 물색중이다.
빙의 자체가 새롭게 불쑥 등장한 현상이 아니다.
옛부터 각 종교마다 자신의 세계관 속에서 이를 다양하게 이해해 왔고 고유한 종교적 의식을 통해 풀어왔다.
이를 등한시 한 채 마치 새로운 이해 대상인 양 엄포를 놓으며 말초적인 공포 분위기만 조성하는 현재의 빙의 관련 프로그램들은 해당 연출자의 의식 수준을 보여 주기도 하지만, 건강한 정신문화 형성에도 심각한 피해를 끼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가산불교문화연구원의 현원 스님은 “귀신을 털어내는 의식인 불교의 구병시식(救病施食)은 죄의식 등 마음 안에 잠재한 여러 의식과 대면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와 현재, 나와 너의 마음이 공유하는 것으로 보는 불교철학 내에서 빙의는 대수롭지 않은 현상이지만 이것을 마치 귀신을 실체화하는 근거로 삼는 것은 문제”라며 “오히려 이런 프로그램이 빙의에 관한 올바른 종교적 접근과 이해를 막는다”고 덧붙였다.
송용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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