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정부’경제정책은 구조개혁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고, 구조개혁은 이헌재 전 재정경제부장관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어쨌든 그는 ‘국민의 정부’ 임기 전반부가 낳은 ‘최고 경제스타’중 하나다.금융·기업구조조정의 최고 전략가, 최전방 지휘관으로 활약했던, ‘구조개혁의 해결사’ 이 전 장관이 7일 물러났다. 재경부 고위간부는 “그 누구보다도 시장의 중요성과 생리를 가장 잘 알았던 장관”이라고 평가했다.
이 전 장관은 재경부장관(7개월 재임) 보다는 금융감독위원장(1년11개월 재임)의 이미지가 훨씬 깊게 각인되어 있다. 초대 금감위원장으로서 ‘은행 불사’의 신화를 종식시킨 부실은행 퇴출조치, ‘금융 빅뱅’을 예고한 대형합병, ‘재벌 불사’의 종막을 알린 재계 서열 2위의 대우그룹 기업개산작업(워크아웃) 등 상상도 하기 힘든 개혁 조치들을 과감하게 밀어붙였다.
이로 인해 해외 투자자들로부터는 ‘한국에서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은 DJ와 HJ(이 장관의 영문약자) 뿐’이란 평가를 받았다. ‘아시아머니’지가 선정하는 ‘올해의 구조조정 기관장상’‘올해의 재무장관상’을 2년 연속 수상하기도 했다.
이 전 장관은 현 정부에서 ‘자수성가’한 인물. ‘국민의 정부’와는 어떤 연고(緣故)도 없고, 권력 창출에 대한 기여 역시 전무했던 이 전 장관이 ‘경제총수’자리까지 올랐다는 사실에서 그의 역량은 입증된 셈이다.
그러나 재경부장관 취임이후 이 전 장관은 ‘구조개혁 해결사’보다는 ‘디지틀 경제의 전도사’로서 변신을 모색했지만 가시적 성과는 금감위원장 때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총선에선 야당과의 관치금융 등으로 논쟁에 휘말렸다. 이어 국제통화기금(IMF)체제 2년째를 맞아 확산되는 국민적 ‘개혁 피로감’과 그의 ‘구조개혁 이미지’는 서서히 불협화음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여권에 뿌리가 얕은 그로서는 이처럼 악화하는 주변 환경속에서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급성 맹장염으로 입원중인 이 전 장관은 이날 서면으로 대신한 이임사에서 ‘구조개혁의 노하우’를 ‘원칙과 유연성의 조화’로 설명했다. “구조조정은 결코 중단될 수 없다.
저항을 이겨내려면 원칙과 신념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원칙을 지키기 위해선 참고 기다리며 설득하고, 때론 일부 양보도 하는 유연성이 필요하다. 개혁은 결코 시험대상이 아니며, 아무리 중요한 개혁이라도 잘못됐다고 판단되면 물러날 줄 아는 것이 진정한 용기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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