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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마을서 미술잔치 열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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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마을서 미술잔치 열렸네

입력
2000.08.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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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속으로’를 주창했던 민중미술의 한 화가가 1990년대 귀농한 후 농민과 부대끼며 빚어낸 미술세계란 어떤 모습일까.그가 마을 주민과 함께 준비했다는 미술 잔치는 못다 이룬 희망의 연장선상일까. 질박한 산골 농토에 새로 들어선다는 미술관은 또 무엇을 담았을까. 그런 궁금증을 안고 5일 강원 원주시 문막읍의 한 산골 마을로 향했다.

남한강 북단, 경기 여주군과 강원 원주시를 가르는 당산(堂山) 골짜기에 자리잡은 강원 첫 산골마을, 취병리(翠屛里). 비취빛이 병풍처럼 쳐졌다는 이름처럼 소나무가 우거진 골짜기는 깊고 그윽하게 푸르렀다.

취병리가 어느 식자(識者)의 정취를 담은 말이라면, 마을 주민들이 부르는 말은 ‘진밭마을’이다.

비가 오면 밭이 질다고 붙인 이름. ‘취병리’와 ‘진밭마을’, 미술과 농사의 간격도 꼭 그 만큼이 아닐까.

산골마을 미술잔치

5일 오후 3시, 마을 입구를 알리는 ‘수풍’(樹風·나무 병풍) 앞에서 주민과 관람객 100여 명이 모여 장승 별신제를 가졌다.

마을 어른들이 모두 나와 고사를 지내며 천지신명께 미술잔치의 열림을 알린 다음, 신명나는 풍물 놀이가 펼쳐졌다. 13일까지 열리는 ‘숲과 마을_미술 축전’은 이렇게 시작됐다.

원주 여주 서울 등의 미술가 10여명과 원주지역 미술단체들이 작품을 낸 이번 잔치의 메인 전시관은 이번에 현판식까지 가진 ‘진밭마을문화관’이다.

마을 공동 소유의 농기구 창고를 개조해 ‘농민 미술관’을 만든 것이다. 이번 잔치를 위해서 마을에 ‘문화진흥회’까지 만들어졌다.

20여평 의 널찍한 공간에 이정학 김진태 백종기씨 등의 작품과 전통등(燈)이 전시됐고, 한편에는 농기구와 지게, 결혼식 때 치는 검은 천막 등 마을 주민들이 간직해오던 물품도 선보였다.

참여 작가들이 직접 그린, 마을 주민의 초상 드로잉 10여 점도 흥미롭다. 마을 주민에게 이보다 더 뭉클한 작품이 있을까.

이 초상은 이번 잔치의 대표적 얼굴이라고 해도 손색 없어 보였다. 소나무 숲 사이에 전시된 5점의 설치작 중 장작더미로 만든 김진열의 ‘손주의 얼굴’도 정겹다.

도시로 떠난 자식이 고향집에 오면 언제라도 방을 데우려고 집 한 쪽에 쌓아둔 장작더미. 김씨는 그 그리움을 담아, 쌓은 장작더미 한 쪽 면에 마을 주민 김춘선씨 손주의 얼굴을 그려넣었다.

어우러짐-김봉준의 꿈

자연과 인간, 미술과 생활의 어우러짐. 한 그릇의 밥처럼 한데 뭉쳐 솔솔 김을 내는 풍경을 꿈꿨던 이가 김봉준(46)이다.

미술가로서 진밭마을에 내려와 이 곳 농민들과 생활한 지 벌써 8년째. 이번 잔치는 김씨와 시골 농민이 만나 빚어낸 그 첫번째 결실이다.

1980년대 민중미술의 한 축을 이뤘던 ‘두렁’. 광주의 ‘일과 놀이’에 홍성담이 있었다면, ‘두렁’엔 김봉준이 있었다.

홍익대 조소과를 나온 후, ‘두렁’을 통해 목판화와 걸개그림 운동을 전개하면서 민중과의 호흡을 열망했던 그다. 6년 동안 부천에서 시민문화운동도 벌였다.

이 곳으로 흘러온 것은 1993년. 흙으로 돌아온 그는 “농사와 예술이 몸과 마음의 살림에 근본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다”며 “이번 축제가 탈(脫) 미술관의 민간미술, 탈 현대의 생태 공동체 문화의 작은 발걸음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큰 병마를 치르고 다시 일어섰기 때문에 김씨로서는 더욱 의미깊은 작업이다.

지난해초 갑작스럽게 몸상태가 악화하면서 임파선암에 걸렸다는 것을 알았다. 몇 개월 동안 병원신세를 진 후 지금은 많이 호전된 상태다.

날은 저물어 가는데

오후 늦게 한바탕 소나기가 지나간 후 날이 어둑어둑해질 무렵, 김씨의 화실엔 오랜만에 옛 동지들이 모였다.

두렁의 전신인 민중문화연구회 ‘한두레’의 성원들. 라원식, 황선진, 유인열, 옥봉환씨 등이 병마를 딛고 다시 내딛은 김씨를 축하하러 왔다.

민중미술 진영의 평론가로 왕성하게 활동했던 라원식씨는 “‘두렁’의 정신이 바로 이런 것 아니었는가”라며 감회에 젖었다.

어둠이 완연히 깃들자 마을회관의 불빛은 유난히 들떠 보였다. 주민 노래자랑, 풍물놀이 등으로 들썩이는 와중에 술잔은 진하게 돌았다.

돌아오는 길. 어찌보면 소박한 마을잔치 그 이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문득 김봉준이 어느 글에서 쓴 글귀가 떠올랐다. “된서리 때문에 꽃만 피고 열매가 열리지 않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된서리가 무섭다고 잎 돋고 꽃피기를 주저하고 싶지는 않다”라는.

글 원주=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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