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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한수산·김훈 에세이 나란희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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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한수산·김훈 에세이 나란희 출간

입력
2000.08.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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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의 50대 남성 작가들은 오늘의 우리 사회를, 우리 삶을 어떻게 읽고 있을까.황석영(57), 한수산(54), 김훈(52).

각기 누구보다 강한 저마다의 개성으로 우리 문학을 대표하는 얼굴들인 이들 3명의 작가가 거의 동시에 소설, 혹은 평문이 아닌 에세이집을 묶어냈다.

중국 작가 루쉰(魯迅)은 “소설 쓰기보다 잡문 쓰기가 한 시대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데 더 유효하다”고 했다 한다.

이들 세 작가의 에세이는 루쉰의 말처럼 어쩌면 소설보다 에세이라는 형식이 이 시대의 요구에 더 접근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인지 모른다.

문학·대중문화에 일침

‘세상살이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황석영씨의 ‘아들을 위하여’(이룸 발행)는 1998년 그가 사면된 후 신문, 잡지 등에 발표한 산문과 몇몇 매체와 의 대담을 모은 것이다.

방북과 긴 해외 망명생활, 귀국 후 4년간의 투옥으로 이어진 작가의 남다른 체험에서 우러나온 사유가 그 특유의 힘있는 주장과 문장에 녹아있다.

그의 사유는 통일, 90년대 문화, 한국문학의 침체 등 문제로 나아간다. ‘아들을 위하여’라는 제목을 부연하듯 그는 이렇게 에세이집을 낸 데 대해 “우선 젊은이들과 마음을 맞추어보고자 한 것”이라 말하고 있다.

그가 보는 지금의 한국 문화는 어떤 것인가.

“대중의 감각은 자본에 길들여지도록 혹사당하고 있는 셈이죠. 온갖 매체를 통하여 예술적 상징물들이 창조적으로 존재할 수 없도록, 감각과 이미지를 시장 속에서 기획하고 복제하고 재생산하여 삶을 기정사실화합니다.

특히 패션이나 광고, 전자오락, 사이버 공간 같은 것들은 은밀하게 통제의 기능이 숨겨진 채로 강요됩니다.” 이런 기본 입장에서 그는 IMF현실과 밀레니엄에 대한 속된 흥분을 질타한다.

문학에 대한 그의 순정은 “우리는 지구 문명에서 물질적으로는 아직 철기시대에 살고 있고 정신적으로는 아예 선사시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문학이 해야 할 일은 아직도 까마득히 남아 있다”는 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의 극복을 위해 그는 이른바 ‘서도동기(西道東器)’, 즉 현재의 물질세계에 번성한 서도까지 담아낼 그릇을 동아시아가 함께 만들어내야 한다고 역설한다.

삶의 슬픔… 희망… 감동

한수산씨의 ‘단순하게, 조금 느리게’(해냄 발행)는 오랜만에 그만이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운 글의 매력을 한껏 담은 에세이집이다.

시종일관 “합니다” “했지요” 의 대화체로 우리 인생의 여러 국면, 삶의 근원적 슬픔, 그럼에도 가꿔나갈 수 있는 희망에 대해서 한씨는 이야기한다.

“당신이 좋아하는 낱말 열 개만 골라보시라”는 주문으로 그는 책의 처음을 연다. “알베르 카뮈는 세계, 고뇌, 대지, 어머니, 사람들, 사막, 명예, 가난의 고통, 여름, 바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당신이, 오늘, 좋아하는 낱말, 열 개만 골라보시지요.”

책 제목에서도 느껴지듯 한씨가 이번 에세이집에서 독자들을 이끌고 있는 곳은 바로 각자의 소박하고도 여유있는 ‘마음의 빈 자리’다.

그냥 보고 싶은 친구를 찾아가고, 그냥 겨울 바다를 찾아가듯, 그런 마음의 빈 자리를 찾아가자고 한씨는 이야기한다. 그의 글은 우리를 어느덧 그 자리로 이끄는 잔잔한 음악과 같은 것이다.

자전거로 만나는 자연

김훈씨의 에세이 ‘자전거 여행’(생각의 나무 발행)은 지난해 가을부터 6개월 남짓 한국일보에 연재했던 자전거 기행을 묶은 것이다.

‘풍륜(風輪)’이라 이름붙인 자신의 자전거 하나에 의지해 그는 태백과 소백을 넘고, 만경강과 감포를 지나 여의도에 이르기까지 반도의 구석구석을 찾아갔다.

김기택 시인의 시구처럼 ‘무수한 땀구멍들의 벌어졌다 오므라들며 숨쉬는 연료’, 다른 문명의 바퀴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땀과 피만으로 돌릴 수 있는 바퀴에만 의지했다.

남루한 문명의 오지, 원형이 훼손된 국토, 혹은 아직도 필설을 거부하는 위대한 자연을 리포트하고 산골 분교의 어린이들과 촌로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을 기록했다.

그 기록이 값진 것은 김씨가 “나는 백전백패할 것이다.

살아서 아름다운 것들은 나의 기갈에 물 한 모금 주지 않았다”며 기록자가 가진 패배의 운명을 알면서도 자신의 땀과 두 다리에 의지해 떠난 그 정신의 소중함이다.

“아, 아무리 만질 수 없다 하더라도 목숨은 기어코 감미로운 것이다”라고 말하는 이 문장가의 영탄은 그 젊은 출발의 정신에 대한 선언으로 읽힌다.

황씨의 글에 붙인 화가 홍성담씨의 삽화, 한씨의 에세이와 한껏 잘 어우러지는 백순실 화백의 그림, 그리고 김씨의 자전거길에 함께 한 사진작가 이강빈씨의 사진은 세 작가의 글을 읽는 감동을 배가한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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