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전 직장도 없이 빈둥거릴 때 거의 매일같이 한강에 나가 놀았다. 그 무렵 한강은 온통 갈대와 물억새로 뒤덮여 있었고 이름모를 갖가지 새들이 살고 있었다. 그중 유난히 바지런을 떨고 시끄럽게 짖어대는 새가 있었다. 진종일 갈대 숲에서만 사는, 개개비라는 이름의 여름새였다.어느날 여의도 샛강 부근에서 갈대 숲을 걷다 개개비 둥지를 발견했다. 숨을 죽이고 지켜보는 동안 개개비 부부는 부지런히 풀잎을 물어다 둥지를 지었다. 아내가 부러운 듯 나직히 말했다. “여보, 우린 언제쯤 집 장만하죠.”
1981년부터는 한강변의 고등학교에서 어줍잖은 국어선생 노릇을 했는데 방과후 곧잘 학생들을 데리고 강가로 나갔다. 그러나 우리가 그 강가에서 시를 고 ‘아침이슬’을 부르는 동안 한강 개발의 음모는 무섭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1988년 교직을 떠나던 날,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강변으로 나갔다. 갈대 숲은 죄다 사라지고 한강 개발은 마무리 단계에 있었다. 그때 지금의 지하철 2호선 당산철교 아래서 죽은 개개비 한 마리와 빈 둥지를 발견했다.
삶터를 뺏긴 한강 개개비의 최후 앞에서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 학생이 내 손에 있던 개개비를 받아들더니 울먹이듯 말했다. “너무 가벼워요.” 그후 창문만 열면 강물에 손 담글 수 있는 마포나루께에 낡은 방 하나를 얻어놓고 뜻있는 이들과 함께 생태기행을 시작했다. 그 강가에 갈대 숲과 개개비를 다시 불러오기 위해서였다.
갈대밭과 개개비가 그리울 땐 자전거를 끌고 한강으로 나갔다. 시멘트로 뒤덮힌 강변길을 달리노라면 사라진 갈대밭은 자꾸만 바퀴에 밟히고 개개비 소리는 체인에 칭칭 감겼다.
그러기를 몇해, 갈대밭과 개개비를 다시 만났다. 1993년이었다. 여의도에서 자전거로 1시간 가량 걸리는 행주산성 부근의 인적없는 둔치였다. 10여년전 개발 바람에 서울에서 쫓겨났던 갈대밭과 개개비들이 거기 있었다.
그윽한 갈대밭 속에 마침 개개비가 알을 품고 있었다. 모두 부화시켜 보내고 마지막 남은 한 알을 끌어안고 있었다. 그리고 한달후 다시 그곳을 찾았을 때 어미 개개비는 그때까지도 썩은 알을 품은 채 긴 장마와 거센 태풍을 초연히 견뎌내고 있었다. 눈물 겨운 모성이었다.
월드컵을 앞두고 ‘새서울 우리 한강’개발이 시작됐다. 다행히 그곳을 생태공원으로 만든다고 한다. 사람들이 뻔질나게 드나들면 갈대 숲과 개개비가 온전할 지는 좀 더 두고볼 일이다.
/김재일 두레생태기행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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