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레이스를 벌이고 있는 민주당과 공화당이 서로 상대방의 정책을 베끼는 바람에 두 당의 이념적 차이가 크게 희석되고 있다.두 당의 정책베끼기는 상대방 진영의 연설문 문구까지 그대로 옮기는 지경에 이르러 진보와 보수라는 건전한 이념경쟁이 사라진 채 서로 '닮기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비판을 사고 있다.
이는 상대측의 고정지지층을 흔들고, 무당파 부동층을 흡수·유인하려는 선거전략에서 비롯된 것으로 표를 끌어모으기 위한 정략적 동기가 지나치다는 다분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지난 3일 폐막된 공화당 전당대회만 봐도 이런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공화당은 민주당 텃밭인 흑인, 히스패닉, 여성, 저소득층의 지지를 얻기 위해 민주당의 단골메뉴였던 교육, 사회보장, 소수인종 문제 등에 대해 전향적 정책방향을 들고 나왔다.
이를 두고 미 언론들은 "조지 W 부시는 다른 종류의 공화당원이며, 당도 과거와는 다르다”고 표현했지만 속사정은 다르다.
공화당은 이번 대선에서 공화당 '전래의 전략’인 '남부전략’을 포기했다.
'남부전략’은 낙태, 동성연애 등 민주당과의 차별성이 뚜렷한 첨예한 이슈를 부각, 유권자층을 양극화시켜 유권자의 다수인 남부지역 백인 남성들의 표를 끌어모으는 표몰이 전략.
1972년 리처드 닉슨, 1980년 로널드 레이건, 1988년 조지 W 부시 텍사스주지사의 아버지인 조지 부시가 모두 이 전략의 기조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 부시 후보의 핵심참모인 칼 로브는 6일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를 통해 "요즘 유권자들은 첨예한 쟁점보다는 긍정적인 정책을 좋아한다”면서 "남부전략은 이제 낡은 패러다임”이라고 고백했다.
민주당도 공화당을 닮아가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지난 1992년과 1996년 빌 클린턴 대통령은 민주당의 진보 색채를 버리고 중도주의 노선을 택함으로써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14일 개막되는 전당대회에서 정강정책이 발표되겠지만 민주당 대선후보인 앨 고어 부통령이 지금까지 발표한 공약들을 보면 지난 대선과 마찬가지로 공화당의 기존 정책색조를 적지않게 수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관측통들은 전당대회에서 고어진영이 민주당의 전통적인 주제들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를 주목하고 있다.
민주·공화의 베끼기는 5일 민주당이 부시후보의 대선후보 수락연설 가운데 주요 문장이 클린턴 대통령의 연설을 표절한 것이라고 주장한데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민주당 관계자들은 CNN방송에서 "우리는 공화당의 일부 아이디어를 슬쩍한 적은 있으나 공화당의 말(word)을 훔친 적은 없다”고 말했다.
민주·공화의 동조화 현상은 '악의 제국’으로 지칭되던 공산권의 붕괴와 신경제 발달에 따른 사상 최대의 경제호황을 배경으로 미국 유권자들의 관심이 생활에 국한되고, 젊은층에 무당파가 점차 늘어가는 경향을 반영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남경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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