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고 차베스(사진)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1991년 걸프전 이후 외국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금단의 땅’ 이라크를 방문한다.6일 9일간의 일정으로 석유수출국기구(OPEC) 10개 회원국 순방에 나선 그는 10일 바그다드에서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만날 예정이다.
이라크는 유엔의 각종 경제제재에다 하늘까지 완전 봉쇄된 국가다.
바그다드에 들어가는 길은 요르단의 암만을 출발, 10시간 이상 걸리는 육로 뿐이다.
때문에 지난 10년 동안 어떤 외국 지도자도 이라크 영토 안에서 후세인을 만날 수 없었다. 이라크 항공기가 합법적으로 외국에 나간 것도 지난 3월 사우디아라비아 메카를 방문하는 이슬람 순례단이 유일하다.
하지만 베네수엘라 외무부에 따르면 차베스는 10일 이란을 출발, 2시간 후 이라크에 도착한다. 항공기를 이용, 비행금지구역을 통과할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차베스가 해외 순방을 시작한 6일은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이후 유엔이 이라크에 제재를 발동한 지 10주년 되는 날이다.
미국 등 서방의 이라크 제재에 항의하고 후세인을 위무하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표시한 셈이다. 후세인 입장에서는 차베스와의 만남을 통해 미국이 결코 자신을 영구히 고립시킬 수 없다는 점을 과시할 호기를 잡았다.
차베스의 독자 외교행보의 이면에는 무엇보다 '반미(反美) 노선’이 깔려 있다. 차베스는 지난해 2월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 마약감시 항공기의 자국 영공 통과를 거부했는가 하면, 지난해 12월 1만5,000여명이 숨진 수재를 당하고도 미국의 도움 만은 거절했다.
미국이 그토록 싫어하는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가 하면, 리비아를 '참여 민주주의의 표본’이라고 칭찬했다.
후세인에 대해선 "우리와 똑같은 신의 아들”이라고 말했다.
이번 해외순방의 노림수는 'OPEC의 정치화’이다. 그는 출국 직전 공항에서 "작고 가난한 제3세계 국가들은 지리학적 위치에 상관없이 단합하는 것 외에 대안이 없다”면서 OPEC의 결속 강화를 거듭 주장했다.
이어 OPEC의 산유량과 관련, "문제는 높은 유가가 아니라 공정한 가격”이라고 강조했다.
경제적 측면에서 차베스의 동선(動線)에 가장 민감한 국가는 미국이다. 미국의 제4위 석유수입국인 베네수엘라가 고유가를 주동하면 미국 경제에 영향이 크다.
차베스는 이미 집권후 여러차례 '공정 유가’를 내세우며 감산에 착수, 미국을 긴장케 한 바 있다. 차베스는 다음달 27일 1975년 이후 처음으로 카라카스에서 OPEC 및 기타 산유국 정상회담을 개최, 다시한번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에 도전할 계획이다.
이동준기자 dj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