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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생각] 다시 새만금 공사 중지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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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생각] 다시 새만금 공사 중지를 촉구한다

입력
2000.08.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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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안군 변산면에 산다. 새만금 간척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다. 여기에 사는 여섯해 동안 새만금 사업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물막이 공사장에서 짬밥을 가져다 짐승을 먹이기 때문에 거의 날마다 진척사항을 직접 보기도 하고 우리 공동체 식구들을 통해서 듣기도 한다.새만금 공사를 계속해서 진행해야 하는지 그만두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많다. 그 의견은 두 가지로 수렴된다. 찬성과 반대. 그런데 그 대립 구조가 눈길을 끈다. 힘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찬성이고 힘없는 사람들은 거의 반대다.

수천년 동안 개펄에 의지해 살아온,그리고 후손들에게 물려줄 유산이라고는 개펄 밖에 없는 힘없는 ‘반대’편이다. 이 ‘반대’편은 힘이 없어서 목소리도 작다. 날마다 개펄에 흩어져 바지락을 캐야 먹고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어느 겨를에 힘을 모아 힘 있는 ‘찬성’편에 맞대거리를 할 수 있겠는가.

힘 있는 사람들은 몇 안되지만 워낙 힘이 세기 때문에 목소리도 크다. 게다가 지역 신문, 방송, 여론 지도자라는 막강한 확성기까지 갖추고 있다. 자기편으로 대학교수들도 끌어들일 수 있고, 고위관료와 정계인사 뿐만 아니라 필요하다면 경제, 환경 전문가까지 끌어다 쓸 수 있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여론조작까지 할 수 있다. 그래도 안되면 ‘대통령’까지 판다. 이렇게해서 ‘찬성’편이 더 많다는 둔갑술이 완성된다. 놀랍다. 감쪽같다. 모두가 자기들은 ‘대통령의 사람’임을 내세운다.

환경단체에서 평가를 의뢰한 전문가들은 열에 여덟이 고개를 젓는데 정부에서 의뢰한 전문가들은 열에 아홉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다면 시민단체의 하나인 환경단체는 야당편인가? 내가 보기로는 그 반대다.

적어도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뒤로 대통령이 세우고 집행하는 중요한 정책이 여지껏 시민단체가 발벗고 나서서 반대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지난 50년이 넘게 줄곧 반대를 외치고, 그 때문에 직업을 잃기도 하고, 감옥을 제 집 드나들 듯하거나 심한 경우에는 고문을 당하거나 목숨을 잃기도 한 사람들이다.

‘가신’들이나 출세주의자들이 대통령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이 사람들이 현대통령을 만들었다. 따라서 이 사람들이야말로 정말 ‘대통령의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새만금 사업에서만은 왜 대통령의 오랜 친구들이 ‘반대’편에 서는가? 이제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야할 때다. 힘 있는 사람들 편에 서서 새만금 간척공사를 계속해서 밀어부칠 것인가. 힘 없는 사람들 편에서서 중지시킬 것인가?

지난 번에 나는 이 난을 통해서 대통령에게 간곡한 편지를 썼다. 힘 없는 지역주민이자 농사꾼으로서. 그리고 힘 없는 재야 시절 대통령의 나이 어린 벗으로서. 마음 놓으시라고. 마음 놓고 새만금 사업 없던 것으로 하시라고. 그리고 남과 북의 화합과 공존의 길을 여는 데 모든 힘을 쏟으시라고. 그런데 이 시점에서 더럭 의심이 솟는다.

대통령이 남북문제에 골몰하느라 다른 일들을 챙길 겨를이 없는 때를 틈타 대통령 이후의 권력을 탐하는 사람들이 대통령 등 뒤에 숨어서 등잔 밑 공사를 하고 있는 것이나 아닐까 하는. 기우이기를 바란다.

인간에게만 생존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생명체들에게도 생존권이 있다. 뭇 생명체들의 생존권이 박탈되면 결국 인간도 살아남을 수 없다.

새만금 지역 개펼은 뭇개펄들이 그러듯이 생명의 왕국이라고 할 수 있다. 개펄의 생명체들이 상생하면서 수천년 동안 우리 조상들의 젖줄이 되어왔고, 지금도 그러거니와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래야한다.

이제 ‘대통령의 사람’들에게 부탁해야겠다. 대통령의 총기를 흐리지 말고 슬기로운 결단을 하시도록 도와드리길.

/윤구병·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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