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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군국제봉사요원 파견제 폐지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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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군국제봉사요원 파견제 폐지 유감

입력
2000.08.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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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기다리던 해외봉사요원 세 명이 얼마전 도착했다. 모두가 20대 젊은이들로 동남아에서도 가장 오지인 라오스에 와준 것이 고맙고 대견하다.국립 ‘우호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할 A양은 피지에서도 봉사활동을 한 경험이 있는 재기발랄한 여성이고 외교부 등 라오스 행정기관의 전산화를 도와줄 컴퓨터 박사 B군은 이미 군복무를 마치고 해외봉사를 지원한 자랑스러운 청년이다.

현지학교 체육시간에 태권도를 지도할 C군은 금번 봉사요원으로 라오스에 온 것이 첫 해외여행이라고 하는데 키가 작아서 입대할 수 없었다며 수줍음을 탄다.

필자가 부임한 직후부터 주재국 정부는 원예, 축산, 관개, 보건, 컴퓨터 등 거의 모든 분야에 봉사요원 파송을 요청해와 적어도 10여명을 파견하여 줄 것을 간청했는데 단 세 명만 온 것이 아쉽기는 하다.

국제교류협력단(KOICA)으로부터 들은 사정에 의하면 징집 대상자중 선발하여 파견하던 국제협력봉사요원 제도가 병역특혜시비로 폐지됐기 때문에 일반 봉사요원만으로는 각국의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다고 한다.

생존가능 정도의 생활비만 지급하고 말라리아 등 풍토병이 많은 험지에 투입되는 봉사요원이 무슨 특혜를 받는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월 30만원에 못미치는 생활비 지급은 우리 병사들에 대한 피복, 급량, 훈련비용보다 훨씬 적을 터인데 병무비리 척결의 불똥이 엉뚱한 곳에 떨어졌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1970년대초 전방의 고지에서 군복무시 여름 장마로 유실된 도로 복구와 겨울의 제설 작업과 식수 나르기 등으로 고생했던 기억으로 미루어 볼 때 병무비리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와 척결요구는 충분히 타당한 것으로 이해가 간다.

그러나 아프리카와 라오스에 근무하며 목격한 정부 파견인사, 농업전문가, 태권도 사범들이 겪는 고통도 결코 적지 않다. 이번에 온 봉사요원들도 현지 음식과 위생 상태에 적응하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라오스에 유용한 기술을 전수해 주어야 할 의무를 띄고 있다.

만약 내년에 또 다른 젊은이들이 군복무를 대신하여 봉사 요원으로 파견돼 온다면 나는 이들을 이역땅 최전방에 근무하고 있는 자랑스런 대한의 국군장병으로 맞아줄 생각이다.

여기 비엔티안에서 대사로 근무하다 작년 미 국무부의 마약담당 수석 부차관보로 영전해간 웬디 쳄버린 여사가 나는 무척이나 부러웠다.

그녀도 1960년대말 이곳에 봉사요원으로 파견되어 영어를 가르쳤는데 그 덕에 라오스어를 잘 구사할 뿐 아니라 그 때의 제자들이 정부기관의 요소 요소에 포진해 있어서 미국이 라오스에서 중점을 두어 추진하고 있는 미군 유해 봉환, 베트남 전쟁시 투하된 폭발물 제거, 아편을 비롯한 마약 퇴치사업에 전폭적 지지를 얻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군복무를 동부전선 800고지 GP에서 35개월을 보내는 대신 라오스 북부 산촌에서 봉사요원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면 주재국 국민과 좀더 친숙하고 라오스 정부가 좀더 환영하는 대사가 되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등학생이었던 1960년대 중반 내가 다닌 시골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쳐준 팽클 선생님이 문득 생각난다. 당시 대학을 갓 졸업하고 피스코의 일원으로 한국에 온 팽클 선생님은 TV와 녹음기는 물론 FM라디오도 없었던 우리들에게 생생한 영어발음을 들을 수 있게 한 유일한 분이었다.

이제는 환갑이 가까워 올, 미서부의 워싱턴주가 고향이라던 선생님이 그리워진다.

이번에 온 세 명의 봉사요원도 후일 라오스에서 땀흘려 봉사한 한국인으로 기억되고 라오스어가 통하는 지역 전문가로 변신하여 한국과 동남아, ASEAN을 넘나들며 활약하는 세계인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또 국제협력봉사요원 파견제도가 부활되고 확충되어 더 많은 젊은이들이 파견되어 올 날을 고대한다.

/정화태 주라오스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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