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국삐끼 "떴다"의약분업이 시행되자마자 약국들간에 치열한 생존경쟁이 시작됐다.
중심가 대형약국과 병원앞 ‘문전약국’은 성시를 이룬 반면 나머지 동네약국들은 환자들의 철저한 외면으로 초비상이 걸렸다. 이 때문에 폐업투쟁중인 동네 병·의원뿐아니라 일부 동네약국들도 잇달아 폐업하고 문을 닫고 있다.
또 서울대병원 등 대형병원 앞에는 생존을 위해 환자들을 상대로 약국들이 호객행위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환자에게 접근해 “우리가 이병원 지정약국이다”“약값이 싸다”“처방약이 모두 갖춰져 있다”는 말로 환자를 유치해 마치 유흥가를 방불케 했다.
서울중앙병원의 경우 인근 약국 4곳에서 나온 셔틀버스들이 본관 뒷길에 대기한 채 ‘손님태우기’경쟁을 벌였다.
일부 셔틀버스 기사들은 환자들의 짐을 대신 들어주거나 노인들을 부축, 차로 안내했고 “우리 차가 제일 빨리 출발한다”고 큰소리를 치기도 했다.
Y약국 봉고기사 양모(28)씨는 “승합차 2대가 교대로 약국과 병원을 왕복하고 있다”며 “손님을 끌기 위해 차안에 방향제를 뿌려놓고 병원 문앞까지 마중을 나간다”고 말했다.
영등포 성모병원에서는 주변 4군데 약국에서 고용한 아르바이트생들이 약제실 주변에서 약국명과 전화번호, 약도 등이 적힌 홍보전단을 돌리다 병원직원들에게 쫓겨났다.
그러나 호객행위도 할 수 없는 동네약국들은 간판을 내릴 지경이다. 서울 여의도 D약국은 “하루에 처방전을 300건 정도는 처리해야 수지가 맞는데 4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걱정했다.
박석원기자
spark@hk.co.kr
■ 의사들 '007처방전'
암호형 약처방... 없는약만 일부러 처방도
일부 병·의원들은 해독이 불가능한 ‘암호형 처방전’이나 소수점 단위의 약처방으로 환자와 약사들을 골통먹였다.
경기 포천의 H의원은 감기약인 부루펜을 처방하면서 원외처방전에는 약품명 대신 의료보험청구기호인 ‘A05002021’라고 표기했다. 또 크로페신정은 ‘A01304361’로 적어 해독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서울의 한 의원은 약품명을 알파벳 1,2글자로만 표시해 약조제에 혼선이 빚어졌다.
서울 M의원은 처방전에 타이레놀 0.833개, 메디락장용캡슐 0.666개로 기입하는 등 모든 약을 소수점으로 처방해 주변 약국들을 난감케 했다. 서울 봉천동 K병원은 원내처방이 가능한 주사제까지 원외처방해 많은 환자들이 애를 먹었다.
약국에는 없는 약을 일부러 처방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경기 안양의 모안과에서는 시중에서 구하기 힘든 수입약품인 ‘토브라젝스’를 처방해 환자들의 항의가 잇따랐다.
서울 방배동 K약국 김모(54)약사는 “의사들이 처방한 5~6개 약중 꼭 1~2가지는 약국에는 없는 것들이어서 제약회사까지 가는 경우가 많다”며 “병원 처방약품을 공개하지 않은 채 희한한 약만 처방해 골통먹인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박석원기자
spark@hk.co.kr
정상원기자
ornot@hk.co.kr
■제약회사들 약 제때 안준다
의약분업 시행후 약국마다 처방약품이 없어 아우성이지만 제약사들이 약품 공급을 하지 않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의약분업의 전망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수요예측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화이자.얀센등 다국적 기업들은 의약분업이 정착되지 않은 상태에서 약을 집중적으로 풀 경우 반품및 재고사태가 일어날 경우를 우려하고 있다.
또 특정 도매상에만 약을 공급하는 바람에 약국의 처방의약품 부족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J제약회사 관계자는 "의약분업후 약 소비형태가 어떻게 바뀔지 몰라 주문대로 약을 줄수 없는 형편"이라고 털어놓았다.
국내 제약회사도 '다빈도 처방약' 재고가 충분치 않는데도 생산량을 늘리기를 망설이고 있다.
의약품 유통관행상 일부 약품값은 후불로 받게 돼 있어 만에 하나 의약분업 내용이 변질될 경우 약품반송에 따른 손해를 떠안게 되기 때문이다.
/김진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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