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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2에 오르다…그곳에 엄마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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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2에 오르다…그곳에 엄마가 있으니까

입력
2000.08.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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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겠지만 이 책이 출간된 지난 달 31일, 한국의 엄홍길씨가 히말라야 K2봉(해발 8,611㎙) 등정에 성공했다.K2봉이 어떤 산인가? 에베레스트보다 200여㎙가 낮은 산이면서도 에베레스트보다 1년 늦게 인간의 발길을 허용한 험산(險山).

세계에서 두번째로 높은 산으로 피라미드 모양의 얼음절벽으로 뒤덮인 신비의 빙산이 K2봉이 아닌가? 영어 알파벳과 숫자로 이뤄진 이름(카라코람산맥의 제2봉이라는 뜻)마저 신비스럽다.

책은 1995년 10월 영국의 한 아버지와 두 아이의 K2봉 현지 관찰기이다.

산악인이자 사진작가인 제임스 발라드(50), 아들 톰(6), 딸 케이트(4·이상 당시 나이). 이들이 파키스탄의 아스콜리라는 곳에서 파유라는 고산지대까지 걸어올라가며 바로 눈앞에 서있는 K2봉을 바라보며 감탄한다는 내용이다.

어떻게 보면 밋밋하기 짝이 없다. 이런 내용을 왜 영국 BBC방송사는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이듬해 방송까지 했을까? 더욱이 딸 아이는 셀파의 등에 업혀 유람하듯 산행을 즐겼는데….

하지만 두 아이의 어머니가 이 시대 최고의 여성산악인으로 추앙받는 알리슨 하그리브스라는 사실, 그녀가 이곳 K2봉에서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을 알면 책 읽기가 확 달라진다.

1990년대 초 알프스의 6대 북벽을 정복한 뒤 1995년 5월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무(無)산소, 무(無)셀파, 단독등정으로 오른 철인. 그 해 8월 13일 K2봉 마저 발 아래 둔 뒤 하산길에 일행 6명과 함께 실종돼 33세라는 짧은 생을 마감했던 여인. 아니, 에베레스트와 K2봉에서도 ‘톰과 케이트가 정말 보고 싶다’고 절규했던 어머니가 바로 알리슨이다.

알리슨 사망 소식이 전해진 다음 날 아이들은 아버지에게 말했다.

“엄마의 마지막 산에 가고 싶다”라고. 그래서 이들의 산행은 시작됐고, 아버지는 부인의 K2봉 등정일기를 읽어가며 아이들과 엄마의 이별 여행을 감행했다.

고산지대 등정은 아이들에게 무리라는 주위의 만류도 이들을 붙잡아 둘 수는 없었다. 왜? 그곳에 엄마가 있으니까.

이들이 K2봉을 현지에서 직접 보게 되기까지 겪은 고생과 감동은 생략하자.

해발 3,000㎙ 이상의 지대에서 생활하는 데 따른 구토와 헛소리 등 고산증세, 같은 길을 걸어갔을 알리슨의 처절한 등산일기, 먼저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는 남편의 애절한 사부곡(思婦曲)…. 하지만 이들이 꿈에 그리던 K2봉을 바라보던 순간의 기록만은 기억해두자.

“구름이 흩어지며 마침내 드러난 K2! 그것은 모든 다른 봉우리들 뒤에서 그들을 굽어보고 제압하고 있었다. 백색의 피라미드, 푸르스름한 회색 바위, 검게 그늘진 음영. K2는 인간들에게 순수한 자연 그대로의, 그 길들여질 수 없는 힘에 맞설 수 있는가를 묻고 있었다.”

이 순간 아이들은 엄마를 위해 케른(돌무덤)을 만들었다.

톰은 작은 손으로 모래땅을 평평하게 고른 다음 아끼던 K2 그림을 꺼내서 네 귀퉁이를 돌로 눌러놓았고, 케이트는 이보다 작은 케른을 준비했다.

제임스도, 동행한 셀파와 의사, BBC 다큐멘터리 제작팀 모두 숨죽인 채 아이들의 성스러운 의식을 지켜봤다. 엄마와의 숭고한 이별 의식을.

끝으로 제임스는 아이들을 대신해 자신을 다독인다. “나는 K2를 알리슨의 무덤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나는 생명이 육신의 죽음과 더불어 끝난다는 생각을 가져 본 적이 없다.

저 위 어딘가에 천상의 공간이 있다면, 아마 틀림없이 알리슨은 앞서 그곳에 도착한 등반의 영웅들을 불러모아 꿈의 원정대를 조직하고, 그 짧은 생애에 다 하지 못했던 산들을 정복하러 떠날 것이다.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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