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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대교가 소리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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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대교가 소리를 낸다

입력
2000.08.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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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려수도의 아름다운 항구 도시 통영, 그곳 바다를 무대로 통영대교가 1일부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다리의 철골 구조물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향과 그 위를 오가는 차량의 진동, 교각에 부딪쳐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소리, 바람 소리가 빚어내는 새로운 음악이다.

세계적 예술가 빌 폰타나, 통영대교에서 음향 설치

통영대교는 31일까지 8월 한 달 간 그렇게 소리를 낸다.

이 신기한 기적의 마술사는 세계적인 음향 설치 예술가 빌 폰타나(53). 1976년부터 세계 주요 도시에서 음향 설치 작업을 해 온 그가 ‘2000 새로운 예술의 해’ 추진위원회의 초청으로 한국에 왔다.

통영이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의 고향이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여서 통영대교 설계도를 보고 작품을 구상한 뒤 나흘 전 들어와 음향을 설치했다.

작품 제목은 ‘사운드 브리지(음향 다리)’. 통영대교 일대 경관에서 받은 영감으로 만든 음악과 자연 음향으로 소리를 ‘조각’했다.

보이지 않는 소리로 조각을 한다? 낯설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옛 선인들이 줄 끊어진 거문고를 나뭇가지에 걸어놓고 소리 없는 음악을 즐겼던 것도 일종의 음향 설치인 셈이니까.

폰타나는 미국 태생이다.

젊은 작곡가로서 그는 전통적인 작곡 기법에는 관심이 없고 일상의 다양한 소리를 음악적으로 형상화하는 데 골몰하다 1960년대 후반부터 자연환경을 음악정보로 변환하는 음향 조각으로 옮겨갔다.

그의 작품 중 유명한 것으로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에 설치한 ‘사운드 아일랜드(소리 섬)’가 있다.

1994년 여름, 개선문 외벽에 숨겨놓은 여러 개의 확성기가 쏟아내는 파도 소리와 갈매기 울음이 주변 거리의 소음을 완전히 덮어버렸다.

도심 한복판에 뜬 ‘소리의 섬’은 사람들을 전혀 예상치 못한 시간과 장소, 기억으로 데려갔다.

그런 식으로 그는 멀리 떨어진 장소를 소리의 다리로 잇곤 한다.

1983년 뉴욕 브룩클린 다리의 개통 100주년 기념 프로젝트였던 ‘진동하는 철제 격자’는 다리를 건너는 차량의 진동으로 뉴욕 월드 트레이드 센터의 외벽을 때렸다.

빌딩 외벽에 숨겨진 스피커가 다리가 노래하는 것을 들려준 것이다.

뉴욕의 휘트니미술관 외벽을 따라 나이애가라 폭포 음향이 흘러내리게 한 ‘수직의 물’(1991), 일본 교토(京都)와 독일 쾰른을 위성으로 연결한 ‘음향 현수교’(1993), 베를린 기차역 소음으로 다른 버려진 역을 붐비는 소리 공간으로 바꾼 ‘먼 곳의 기차’(1984)…. 시드니, 바르셀로나, 샌프란시스코도 그의 음향 설치 전시장이 됐다.

폰타나의 작업은 화가 마르셀 뒤샹의 오브제나 작곡가 존 케이지의 ‘3분 33초’와 일맥상통한다. 뒤샹은 1917년 뉴욕의 그랜드센트럴 화랑에서 남자용 소변기를 ‘샘’이라고 이름 붙여 전시함으로써 부르주아를 격분시켰다.

소변기가 예술작품으로 둔갑할 수도 있다는 지독한 유머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대중은 분노로 정신이 나갔지만, 그건 장난이 아니라 사물의 성격을 바꿔버린 혁명이었다.

케이지의 ‘3분 33초’는 그 시간 동안 연주자가 가만히 앉아 있다 퇴장해버리는 작품이다.

무언가 소리 나기를 기다리는 그 특별한 긴장의 시간에 들리는 온갖 소리가 바로 음악인 것이다.

뒤샹과 케이지가 그러했듯 폰타나는 ‘사운드 브리지’ 통영대교를 통해 통념을 깨부수는 새로운 음악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이 작업은 한산대첩 기념 축제의 하나로 마련됐다.

이에 맞춰 14일 젊은 타악그룹 푸리와 공명이 폰타나의 음향과 어울려 즉흥연주를 펼치는 기념공연도 펼쳐진다. (02)3471_7192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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