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스쳐 지나다가 눈에 띄는 그림 통계 하나를 발견했다. 국민의 정부 2년의 성과를 설명하는 중에 ‘국민화합을 위한 사면조치’결과를 표로 정리한 것이었다.본 즉, 국민의 정부는 재임 2년 사이 5차례 사면을 단행했으며 그 수혜자가 5백54만명에 이른다. 사면의 게제는 대통령 취임과 취임 1주년 경축, 두 차례 8.15, 새 천년을 맞는 ‘신년 대통령 은전(恩典)조치 단행’ 등이다.
국민의 정부는 한해 두차례 이상의 사면을 정례화(定例化)한 셈인데 이번 8.15에도 대대적인 사면이 있을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남·북관계 급진전에 때 맞추어 개각(改閣)을 단행하고 사면을 병행함으로써 정국을 쇄신하고 민심을 일신하자는 뜻일 것이다.
대통령의 사면권은 본디가 전제군주제의 유물이다. 보기를 예전 일본 헌법에 서 보면 “천황은 대사(大赦) 특사(特赦) 감형 및 복권을 명(命)함”(제16조)이라 한 것이다.이 것이 우리 헌법에 “대통령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사면, 감형 또는 복권을 명할 수 있다”(제70조)로 이어지고 사면법 또한 일본 것을 계수(繼受)하여 사면권 행사에 별 제약이 없다.
그래서 그랬던지 우리 헌정사 50여년 사이 사면조치는 84회, 한 해 1.6회 꼴로 시행이 됐다. 더구나 시국사범을 양산했던 5공에서는 사면이 21차례나 있었다.
이런 관행은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이 지난 98년 푸에르토리코 테러분자 12명을 사면한 뒤, 사면권 남용 혐의로 의회 조사를 받았던 것과 대조가 된다. 그 때까지 6년동안 클린턴 대통령은 3천여건의 사면 청원을 접수하고 단 3건에 대하여서만 사면권을 행사하고도 곤욕을 치른 것이다. 사면권 행사가 어떠해야 하는 지에 대한 보기라 할 것이다.
물론 대통령의 사면권은 그것대로 쓰일 데가 있다. 지나친 판결 결과를 시정할 수도 있고, 사정변경에 따라 이를 사법정의(司法正義)에 반영하는 구실도 한다.
그러나 대통령의 사면권은 3권분립, 사법권의 독립이라는 헌법질서의 예외중 예외임에는 변함이 없다. 예외를 상례화(常例化) 하는 것이 잘못임은 말할 나위도 없고 그 것을 정치 게임의 일환으로 이용할 때에는 법치(法治)의 기반마저 뒤흔들 수가 있다.
그런데 민주화가 진전되었다는 90년대 이후 그런 걱정이 현실로 되고 있음은 어찌된 일일까. 정치와 준별해야 할 사면이 정치와 뒤섞여 돌아가는 것이 그런 걱정의 한 단면이다.
사면법상 아무 권한도 없는 집권여당이 사면 대상자의 명단을 만들어 사면을 건의하는가 하면 야당은 야당대로 자기편 사람의 사면을 내놓고 요구한다. 그러다 보니 사면 때마다 비리(非理) 정치인이나 권력층 인사가 슬그머니 끼어 들어 국민의 법 감정을 거스른다.
그 결과가 지난 4.13 총선 입후보자중 전과 기록이 있는 사람이 189명, 그 중 117명은 사면·복권을 받아서 피선거권을 회복한 사람이라는 웃지 못할 통계다. 법의 단죄가 축구 심판의 퇴장명령만도 못한 꼴이 된 것이다. 이런 사정과 오늘의 코미디 같은 정치 현실이 결코 무관할 수는 없다.
옛 사람들은 형정(刑政)을 다르면서 신형(愼刑=형벌을 삼가함)과 신사(愼赦)를 함께 다짐했었다. 옥공(獄空=형무소가 비어 있음)이라는 왕도정치(王道政治)의 허울을 위하여 함부로 은사(恩赦)를 베풀다가는 나라의 기강이 무너질 것임을 경계한 것이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살인 강도와 뇌물죄 등 6범(6犯)은 사면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이제는 우리도 ‘신사’를 생각 할 때가 된 것 같다. 권력형 비리 정치자금ㆍ선거 사범등을 사면에서 제외하는 방도는 있어야 하고, 사면권 행사에 앞서 사법부와 입법부의 의견을 듣는다든가 사면 대상자 선정에 시민적 참여를 가능케 하는 제도도 검토함직 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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