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 하늘에 작은 먹구름이 이는가 싶더니 삽시간에 부채꼴로 퍼지며 온 하늘을 뒤덮었다. 세상이 온통 밤처럼 캄캄해지고 메뚜기들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 그들이 내려앉는 곳은 모두 졸지에 누런 황무지로 돌변한다. 아낙네들은 모두 손을 높이 쳐들고 하늘의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올렸고 남정네들은 밭에 불을 지르고 장대를 휘두르며 메뚜기 떼와 싸웠다.”펄 벅의 ‘대지’를 책으로 읽었거나 영화로 본 사람이면 누구나 가장 생생하게 기억하는 장면이다. ‘대지’의 배경이었던 이웃 나라 중국이 올해 20년만에 최악의 가뭄을 겪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메뚜기 떼마저 극성이란다.
멀리 남미의 페루에도 엘니뇨로 인한 기상 이변으로 약 1억5,000만 마리의 메뚜기들이 엄청난 면적의 농경지를 쑥밭으로 만들고 있다. 그곳도 역시 거의 20년만에 겪는 최악의 상황이라고 한다. 하늘이 노했거나 자연이 대반격을 시작한 모양이다.
하늘이 노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구약의 출애굽기에 보면 모세가 애굽의 왕에게 여러 번에 걸쳐 자신의 백성을 풀어달라고 간청해도 들어주지 않자 하느님이 온갖 천재를 일으키는 얘기가 적혀 있다. 성경을 과연 역사책으로 봐야할 것인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메뚜기 떼를 비롯하여 개구리, 파리 등이 갑자기 많아져 생태적 재앙을 불러일으키는 일이 그 옛날에도 심심찮게 벌어졌음을 시사한다.
이른바 이동성 메뚜기들은 세계 곳곳에 수십 종이 분포하지만 그 중 가장 악랄한 종류는 바로 아프리카 메뚜기들이다. 이들은 주로 대륙의 중부와 동북부 지역에 살다가 기후조건이 적절해지면 그 수가 급증하여 중동지방은 물론 멀리 인도까지 이동한다.
계절풍을 타고 하루에 평균 30~40㎞에서 심지어는 100 ㎞를 이동하며 많게는 10억에서 100억 마리가 함께 떼를 지어 움직인다. 이들이 잠시 묵어 가기로 결정한 곳에 풀잎 하나 제대로 남기 어려운 것은 바로 이 엄청난 숫자 때문이다.
개체군의 크기가 증가하는 데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사망률이 줄어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출생률이 증가하는 것이다. 인류집단의 경우에는 농업혁명을 계기로 출생률이 급증했고 산업혁명과 더불어 사망률 역시 지속적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에 불과 1만년만에 평범한 한 종의 영장류에서 60억 인구를 자랑하는 만물의 영장이 되었다.
이동성 메뚜기들도 기후조건이 맞으면 평소의 5배나 되는 알을 낳아 개체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것이다.
사망률을 증가시키는 것보다는 출생률을 감소시키는 것이 훨씬 인도적이다. 우리 나라는 세계에서도 산아제한을 가장 성공적으로 달성한 나라 중의 하나다.
1960년대만 해도 누구 집이나 대여섯 씩 낳던 자식을 반 세기도 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평균 둘도 안 되게 줄이는 데 성공했다. 자주 느끼는 점이지만 마음만 제대로 먹으면 무엇이든 해내는 게 바로 우리 배달민족이다. 메뚜기들도 우리 민족의 슬기와 용기를 배우면 좋으련만.
/최재천 서울대교수 생명과학부 jcchoe@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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