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안산의 시화·반월공단 주변 시화신도시 주민들의 여름은 하루하루가 고통이다.오염된 바다와 썩은 호수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다시피하는 악취에다, 공단에서 쏟아내는 화공약품 등의 냄새가 온 시가지를 덮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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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화지구 주변 부녀회장 인터뷰
일년내내 푸른 하늘 한점 보기 힘든 매연과 소음은 이제 운명이려니 참아 넘긴다해도, 해마다 이맘때면 꼭꼭닫은 창문 틈으로 파고드는 악취는 정말 견디기 힘들다.
수년째 반복되는 대책없는 고생에 주민들은 이제 하소연할 기력마저 잃었다. “시화가 신(新)도시라고요? 천만에요. ‘쉰’도시입니다.”
◆악취가 진동하는 밤
1일 새벽 시화공단에서 200여㎙ 떨어진 시흥 정왕동 M아파트. 창과 문틈을 빈틈없이 막아놓았지만 형언할 수 없는 악취는 집안 어디에나 배어있다. 쉰 빨래 냄새, 우유썩는 냄새, 암모니아냄새? 주민 이모(32·여)씨는 “두통을 느낄 정도의 역겨운 냄새로 여름이면 숱한 밤을 지새운다”고 진저리를 쳤다.
비슷한 시각, 반월공단 옆 안산 월곡동 주택가도 마찬가지. 여관을 운영하는 박모(45·여)씨는 “하수구냄새 같은 것이 진동, 투숙객들의 불만이 커 객실마다 방향제를 나눠주고 무마시킨다”고 말했다.
공단과 직선거리 3㎞나 떨어진 거모동 주민 강모(59)씨도 “흐린 날이나 해풍(서풍)이 부는 날, 특히 토요일 밤에는 냄새가 더욱 심해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빨리 이 곳을 뜨고싶은 주민들은 집값 하락을 우려해 이런 사정이 알려지는 것을 기피한다. 김모(389·여)씨는 “외부인들에게는 살만하다고 둘러대지만, 34평 아파트가 7,000만원대에 급매물로 나오는 등 수도권 어느 지역보다도 시세가 낮다”고 말했다.
◆오염원
2,300여개의 업소가 꽉 들어찬 시화공단의 공장 굴뚝 곳곳에서는 하루종일 연기와 함께 메스꺼운 냄새가 피어오른다. J화학 부근에서는 쉰냄새가 코를 찔렀으며 인근 반월공단의 D화학 I화학 H사 등에서 발생되는 악취는 주변 2km를 뒤덮였다.
밤이 되면 냄새는 더 심해진다. 1일 새벽 합성수지제조업체인 K사와 J화학 등의 공장에서는 낮보다 더한 악취가 풍겨나왔다. I사는 자체 하수처리시설조차 가동하지 않느지 데워진 오폐수가 그대로 하수관로로 흘러가, 주변 도로 맨홀뚜껑 구멍마다 역한 냄새를 동반한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작은 도랑들은 시커먼 물을 연신 시화호 쪽으로 흘려보냈다. 검은 도랑에 사는 생물체라고는 소금쟁이 뿐이었다. 시화호에 잠긴채 썩어가는 쓰레기더미들도 끊임없이 역겨운 냄새를 토해냈다.
◆행정당국 입장
시흥 정왕동의 아파트단지 이른바 시화신도시는 96년부터 입주를 시작, 현재는 33,000여세대 11만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시흥 환경감시센터측은 지난 1989년 원래 준공업지역이던 이곳을 주거지역으로 용도변경한 것이 잘못이라고 말한다. 공단에는 악취배출업소가 707개에 달해 아무리 단속을 강화해도 절대 거리가 가까운 것은 어쩔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민 김모(55)씨는 “단속이 느슨한 새벽에 악취가 집중 발생하고 또한 시청에 신고하면 2시간 뒤에는 악취가 사라지는 때가 많다”며 “불법배출의 증거”라고 주장했다.
경인지방 환경청관계자는 “새벽시간대 악취가 심한 데는 풍향과 기온역전현상등 기후적 요인이 크다”며 “하지만 업소의 불법 방출과도 무관치는 않다”고 말했다.
시흥시청 김충인 환경보호과장은 “시화공단에 대한 단속처벌권이 환경부에만 있을 뿐 자치단체에는 없어 속수무책”이라며 “서울에 부적합한 시설들을 이전하기위해 시화공단을 조성한 자체가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강 훈기자
hoony@hk.co.kr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시화지구 주변 부녀회장 인터뷰
경기 시흥시 M아파트 총부녀회장 김영미(34)씨 가족은 몇일 전 밤 갑자기 숨이 막혀 괴로워하다 잠에서 깼다. 너무 더워 혹시나하고 열어놓은 창문으로 역겨운 냄새가 밀려들어온 것. “보채며 우는 아이들을 달래며 저와 남편은‘빨리 돈 벌어 이 동네를 뜨자’고 또 한번 다짐했습니다.”
큰아들(9)이 가장 갖고 싶어 하는것은 ‘에어컨’. 악취를 조금이라도 막기 위해 문을 닫고지내는 날이 많아 아이들의 몸이 땀띠로 뒤덮이는 등 더위고생이 이만저만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고통받으면서도 쉬쉬해야 할 땐 정말 서럽지요. 소문나면 아파트값떨어질까 봐 제대로 항의조차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김씨가 공개적으로 지역환경 개선활동을 하는 것조차 못마땅해 하는 주민들이 많다.
“정부도 이런 우리의 약점을 아는지 수십번 민원을 제기하지만 제대로 된 답변 한번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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