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간의 ‘칩거’를 끝낸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가 ‘야성(野性) 회복’쪽으로 분명한 가닥을 잡았다.31일 측근들의 입을 통해 전해졌던 이같은 이총재의 U턴은 1일 ‘JP와의 통화설’이 흘러나오면서 움직일 수 없는 결정이 됐다.
이총재는 그동안 ‘밀약설’때문에 내내 잠을 설쳤다고 한다. 몇차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소속 의원들 조차 고개를 갸웃하자 “도대체 어떻게 해야하나”며 안타까워했다는 게 측근들의 얘기다. 국회법 날치기 만큼이나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마당에 이총재가 31일 오후 자민련 김종필(金鍾泌) 명예총재와 통화했다는 보도가 1일 일부 언론에 터져 나온 것.
이총재는 이날 이를 ‘또 다른 음모’로 받아들였다. 이총재는 기자들의 질문에 “자민련에 물어보라. 어느 유령하고 통화를 했는지…”라며 불쾌해 했다. 이총재 측근들은 JP가 비서를 시켜 통화를 시도했으나 이총재가 거절했다고 전했다.
이날 총재단회의서의 이총재의 발언은 의미심장하다. 이총재는 “당과 나의 행동 원칙은 오직 하나다. 어떤 정파와도 정략에 따라 야합하지 않고 오로지 국민이 원하는대로 국민을 향해서 행동하겠다”고 선언했다. 여권을 향한 선전포고의 성격이 짙다.
밀약설과 날치기에 대한 민주당의 사과, 국회법 개정안의 원천 무효, 날치기 재발 방지 등이 없이는 “협상은 없다”는 뜻이다.
이총재는 이와 함께 “교섭단체 완화는 총선 민의에 어긋나는 것으로 위당설법(爲黨設法)이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JP와의 2차 회동도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지극히 낮다.
이총재의 강경 선회로 교섭단체 요건을 15~18석으로 낮추는 ‘대타협론’은 아예 자취를 감췄다. 온건파는 숨을 죽이고 있다. 총재단회의서는 “처절하게 막다 깨지는 모습이라도 국민에게 보여주자” 는 강경한 목소리만 나왔다.
이총재가 ‘상생(相生)의 정치’를 접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인 측면이 있다. 멈칫하기에는 당의 내홍(內紅)이 심상치 않다.
일부 의원들은 공개적으로 이총재의 유약함과 무원칙을 나무랐다. 결연한 의지가 아니고서는 소속 의원들을 묶어둘 수가 없는 상황이다.
자민련을 교섭단체로 만드는 쪽으로 협조하더라도 현실적인 득이 별로 없다는 계산도 작용한 듯 하다. ‘가재는 게편’이라는 판단이다. 실제 한 부총재는 “자민련의 실체를 아예 머릿속에서 지워버리자”고 말하기도 했다.
최성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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