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기업마다 사외이사가 늘어나면서 이들이 불합리한 경영관행에 제동을 걸고 오너보다는 주주 중시경영을 내세우면서 재벌개혁의 선봉장으로 부상하고있다.현행 증권거래법상 상장기업은 총 이사수의 25%를 사외이사로 선임하도록 하고 2001년부터 50%로 확대할 예정이지만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올해부터 이사회 절반을 사외이사로 채우고 있다.
‘사외이사 반란’의 대표적 예는 현대중공업의 현대전자·증권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 현대중 사외이사들은 과거 관행처럼 이뤄져왔던 계열사 지급보증에 대해 이사회에서 오너의 의사에 상관없이 구상권 행사를 결의하고, 그룹의 중재에도 불구하고 법정 소송을 강행했다.
이에 대해 재계는 “무력한 줄로만 알았던 사외이사들이 제목소리를 내고 이사회가 오너의 울타리를 벗어나 경영진이나 지배주주의 경영 잘못을 감시·견제하고 기업의 부실을 사전에 예방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한다.
삼성전자 사외이사들도 지난달 이사회에서 중간배당률을 놓고 이의를 제기하는 등 주주이익을 대변하려는 모습을 보여줬다. 한 사외이사는 “삼성전자가 올 상반기에만 3조원이 넘는 당기 순이익을 냈는데 주주들에게 액면가의 10%의 중간배당만 줄 경우 납득하기 힘들 것”이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이익을 사내에 보유하는 것도 장기적으로는 주주를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돼 중간배당률 상향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회사로선 사외이사들이 더이상 ‘거수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계기가 됐다.
LG그룹도 LG정보통신과 LG전자합병 과정에서 사외이사들이 목청을 높이는 바람에 홍역을 치렀다. LG정보통신은 지난달 8일 LG전자와의 합병을 승인하는 이사회를 열었으나 일부 사외이사들이 합병에 따른 조직 갈등 등 문제점을 꼼꼼히 따지고 드는 바람에 이사회가 2시간가까이 길어졌다.
LG관계자는 “당시 정보통신에서는 사외이사들이 그처럼 강도높게 합병 대책을 점검할 줄 예측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기업이 부실해지면 사외이사도 경영진과 함께 책임진다는 분위기도 정착되고 있다. 한국투신과 대한투신은 최근 공적자금 투입으로 사장이 퇴진하면서 사외이사 6명과 감사도 퇴임하는 등 경영진이 전면 개편됐다.
사외이사 양성과정을 개설하고 있는 한국능률협회 관계자는 “사외이사가 이사회내 인사소위원회와 감사위원회를 통해 제목소리를 낼 경우 오너들에 의한 경영전횡이 사실상 불가능해 질 것”이라며 “아직은 시작 단계지만 전문경영인체제와 이사회중심 경영이 사외이사라는 제도적 장치를 통해 급속히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김호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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