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이 30일 재일 조총련 동포의 모국 방문을 공식적·합법적으로 허용키로 했다는 것은 이산가족 문제해결의 지평이 해외 동포들에까지 확대됐다는 의미가 있다.동시에 이번 조치는 일제의 강점과 남북 분단의 불행한 역사로 태어난 재일 동포사회가 냉전적 분열과 갈등을 극복, 대단결을 도모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전망이다.
정부 당국자는 31일 “재일 조총련의 남한 방문 허용은 1975년부터 시작된 조총련 동포들의 모국 방문사업을 공식화, 합법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재일동포는 현재 63만명 정도로 이중 남한 출신이 전체의 90%를 차지한다. 이 가운데 조총련계는 13만~20만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의 모국 방문은 그동안 제한적·선별적으로 이뤄져 왔다. 과거 남측의 군사정권들은 ‘모국방문사업’을 통해 조총련의 와해를 꾀하고, 재일 동포들간 이념적 대결을 조장했다.
이들이 남한에 오려면 조총련 탈퇴와 한국으로의 국적 변경, 신원 조회 등 복잡하고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야 했다.
조총련 동포들은 그동안 “남한의 역대 군사정권이 재일 조총련을 적대시하는 반공정책을 펴 이산가족이 됐다”며 기회 있을 때마다 인도적 차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최근 들어 비교적 자유로운 왕래가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남한 방문을 꺼리고 있다.
북측은 조총련 남한방문 허용 조치로 남북화해의 기류와 함께 조총련의 숙원인 인도적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분을 내세울 수 있다. 동시에 경제회복에 필수적인 자금줄을 쥐고 있는 조총련의 조직와해를 막을 필요가 있었다.
북측은 1990년대 들어 조총련 사회의 급속한 붕괴에 큰 위기감을 느껴 왔다. 많은 조총련계 동포들이 국력이 앞서는 남측의 고향으로 가기 위해 민단으로 전향해 오고 있어 어떤 식으로든 대책을 세워야 했다.
남측도 이번 조치가 북쪽에 고향을 둔 민단측 인사들의 고향방문을 단계적으로 실현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정부는 내달 추석을 계기로 조총련 동포들의 자유로운 고국방문이 이뤄지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할 방침이다.
박진용기자
hub@hk.co.kr
■모국방문 사례
75년 추석성묘단 1,300명 첫발길
조총련 동포들의 모국 방문은 박정희 정부때 민족 대단결과 남북한간의 제반 교류를 선언한 7·4 공동성명 정신에 따라 1975년 본격 추진됐다.
그 해 9월 조총련 1세대 추석 성묘단 1,300여명이 국민들의 열렬한 환영속에 처음 고국을 방문했다.
모국방문 조총련 동포는 1979년까지 매년 4,000~5,000여명에 달했으나 1981년부터 조총련 1세대의 방문이 뜸해지면서 1990년까지 매년 2,800여명, 1991년부터는 매년 1,000여명으로 줄어 들었다.
사업 시작당시 재일동포 세력 분포는 조총련 34만명, 민단 25만명, 중립 7만명으로 조총련 세력이 월등했으나 지속적인 방문사업 결과 지난해 현재 조총련 세력은 20만명 미만으로 감소한 반면 민단 세력은 48만명으로 증가했다.
1976년 효과적인 사업추진을 위해 범국민적 민간기구로 출범, 사업을 주관해온 해외동포 모국방문 추진위원회측은“지난해까지 모국을 방문한 조총련계 동포는 4만7,200여명에 이른다”며 “조총련 간부, 북송가족 연고자, 조선은행 융자대부자를 제외하고 1세대 대부분은 고향을 방문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김승일기자
ksi8101@hk.co.kr
■재일동포사회 반응
민단 "北방문 이어졌으면…" 기대
조총련계 동포의 고향 방문에 협력하기로 한 남북 장관급회담의 합의를 두고 재일동포 사회는 31일 차분하고도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조총련 중앙본부 국제통일국 관계자는 이날 “공식적인 논평이 아니다”라고 전제, “조건없는 고향 방문의 실현이란 점에서 커다란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그러나 과거 한국 당국이 조총련계 동포의 고향 방문을 정치적 선전물로 삼았으며 지금도 두번째 방문부터는 한국 국적의 선택이나 자녀를 조총련계 학교에서 일본·한국 학교로 옮기는 등의 조건을 강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단은 이같은 합의가 남북 화해 분위기에 도움이 되고 장기적으로 민단계 동포의 북한 방문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해 기대를 표했다.
민단 중앙본부 선전국 정영철 부국장은 “장차 민단계 동포의 북한 방문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며 “동포의 6% 정도가 북한이 고향인데다 북송 동포들의 가족과 친지들 가운데서도 북한 방문 희망자는 많다”고 밝혔다.
한편 조총련계 동포의 한국 방문이 거의 제약없이 이뤄지고 있는 현실에서 이번 합의는 정치적 의미는 있겠지만 실질적인 의미는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특히 조총련 관계자들 사이에 이런 의견이 많아 눈길을 끌고 있다.
조총련 지방본부의 한 간부는 “중앙본부 핵심 관계자들을 빼면 그동안 갈 만한 사람은 다 한국에 다녀 왔다”면서 “언제든 갈 수 있는데 중앙본부가 구성할 공식 방문단에 들어갈 이유가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또 조총련계 식품회사 관계자는 “사업상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하면서 한국 국적 선택을 권유받긴 했다”면서도 “그에 응하지 않고도 아무 문제없이 드나들고 있다”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쿄=황영식특파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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