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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하진 창작집 '라벤더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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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하진 창작집 '라벤더 향기'

입력
2000.08.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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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서하진(40)씨가 세번째 창작집 ‘라벤더 향기’(문학동네 발행)를 냈다. 그의 소설을 읽는 것은 어떤 불길하면서도 정열적인 사건에 휘말릴 것 같은 강렬한 경험이다.‘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언제나 예고 없이, 불쑥, 휴일의 기대를 일그러뜨리며 찾아온다’(‘라벤더 향기’에서).

그의 작품 속 한 구절처럼 서씨의 소설은 우리의 평온한 일상 뒤에 숨은 허위성을 발가벗겨 보여주며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들’처럼 독자들을 한동안 괴롭힌다.

그가 폭로하는 우리 생의 허위성은 결혼과 가족이라는 제도의 거짓됨, 겉으로 안온해 보이는 일상 뒤에 독버섯처럼 퍼지고 있는 권태, 그 허위와 권태를 탈출하는 방식으로서의 ‘불륜’이 가진 또 다른 위선 같은 것들이다.

그 허위성을 서씨는 비슷한 연배의 다른 여자 작가들과는 달리 치밀한 서사의 전개로 펼쳐보인다.

최근 많은 여작가들의 소설이 스스로의 내면을 드러내는 고백체 소설이나 글쓰기 그 자체를 위한 글쓰기에 머무르고 있는데 비해 그의 작품이 고품격의 서사미학을 획득하고 있다는 평가는 여기서 나온다.

이번 작품집의 표제작은 서씨 소설의 이런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단편이다. ‘출장 중일 때가 더 많은, 거의 언제나 출장 중인’ 남편을 둔 주인공은 그 남편의 빈 자리를 미스터리 애정영화 보기와 라벤더 등 각종 꽃향기를 수집하고 맡는 것으로 메꾼다.

그녀에게 새로 이사온 아래층의 남자는 거부할 수 없는 불륜의 계기다. 이 남자에게 빌려주었던 자동차가 뺑소니 살인 혐의로 조사를 받게 되고, 남편에 대한 세무조사가 겹쳐 일어나면서 여자의 일상은 온통 불안에 빠지게 된다.

마치 한 편의 스릴러 영화를 보는 것처럼 치밀한 사건 전개로 독자들을 궁금증에 빠트리며, 단문(短文)으로 이어지는 섬세한 심리 묘사로 세련된 소설언어를 보여주는 ‘라벤더 향기’는 근래 드문 탈일상의 욕망에 대한 뛰어난 보고서로 읽힌다.

가족관계의 붕괴_불륜이라는 일탈로 이어지는 이야기 구조는 서씨 소설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돼 있다. 이번 소설집에 실린 작품들도 그렇다.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남자’는 몰락한 부유한 집안 출신의 남자가 가족과 부인으로부터 동시에 당하는 소외를 그린다.

‘저만치 누군가가 보이네’는 옥바라지해준 자신을 배반하고 장관의 사위가 되는 남자를 오히려 연민하는 여교수의 이야기다. ‘불륜’은 결혼과 가족관계에서 자신의 삶을 찾을 수 없는 이들 주인공들의 몸부림이다.

그러나 이들이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고 내면의 거역할 수 없는 정열을 실현하기 위해 비상구처럼 찾는 그 탈출구도 결국은 깨어질 환상일 수밖에 없다.

“막 받아와 우아한 향기를 뿜는 꽃일수록 질 때의 냄새는 고약했다… 구역질이 올라왔다”는 ‘라벤더 향기’에서의 서씨의 표현처럼.

평론가 홍정선씨는 “서씨의 주인공들이 저지르는 반란들은 적어도 소설 속에서는 도덕적 차원의 판단을 벗어나 글썽이는 눈물로 우리의 공감을 호소한다”고 말했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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