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토 후지모리 페루 대통령의 무리한 3선 취임이 예상대로 대규모 시위사태를 불러 페루 정국이 극도로 불안하다.28일 후지모리의 취임식을 전후해 수도 리마 등을 휩쓴 항의시위는 29일 일단 진정됐지만 5년 임기가 ‘고난의 행군’이 될 것임을 예고했다.
26일부터 재선거를 요구하며 평화적으로 진행되던 시위는 28일 8만여명의 대규모 시위로 커졌다. 흥분한 일부 시위대가 10여곳의 정부기관에 불을 지르면서 폭력시위로 발전했다. 국영은행 ‘방코 데 라 나치온’에선 시위대가 지른 불로 은행경비원 등 6명이 숨졌다.
경찰은 물대포와 최루탄을 동원해 투석전을 전개하는 시위대를 강경 진압, 190여명이 부상했다. 병원관계자들은 부상자들 가운데 4명의 총상환자가 있다고 밝혀 경찰에 의한 발포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삼엄한 경비 속에 국회의사당에서 치러진 취임식에서 후지모리는 “민주제도를 강화하고 고용창출과 경제발전 등을 통한 페루의 번영을 이루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행사 도중 야당의원 46명이 항의표시로 의사당을 빠져나가고 대부분의 중남미 국가 정상들이 불참하는 등 박수받지 못하는 취임식이었다. 후지모리는 시위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페루 여야는 서로에게 폭력시위의 책임을 전가하며 맞서고 있어 첨예한 대치정국은 계속될 전망이다. 야당인 ‘페루의 희망’ 대선후보였던 알레한드로 톨레도는 “우리는 평화시위를 원했지만 시위대에 섞여있던 100여명의 비밀경찰이 의도적으로 시위대를 자극했다”며 “방화 등 극단적 폭력은 모두 이들이 저질렀다”고 비난했다.
이에대해 정부와 여당은 “야당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것이며 시위대들은 의사당에 방화함으로써 취임식을 무산시키려는 음모를 지닌 테러주의자들”이라며 야당지도부에 대한 범죄혐의 적용까지 거론하고 있다.
후지모리는 집권초기 8,000%에 이르던 살인적 인플레를 진정시키고 경제안정을 이뤄 연임에 성공했지만 지난해부터 민영화 및 긴축정책 등이 실패, 고실업률과 물가상승, 부정부패 시비 등으로 지지율이 급락했다.
1월 위헌시비를 무릅쓰고 3선출마를 선언한 그는 4월 1차 대선투표 결과 톨레도 후보를 앞섰으나 과반수 득표에 실패해 결선투표로 이어졌다. 톨레도는 부정으로 얼룩진 선거결과를 승복할 수 없다며 사퇴, 결선투표는 후지모리 단독출마로 치러졌다.
그러나 컴퓨터 조작 등 부정선거 징후가 곳곳에서 발견됐고 미주기구(OAS) 국제선거감시단도 심각한 선거부정에 질려 철수해 버려 후지모리의 정통성은 크게 손상을 입었다.
이와 함께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물론, 우호관계이던 중남미 국가들마저 경제제재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후지모리는 사면초가에 빠진 상태다.
/이주훈 기자 ju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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