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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색21](35) 삶의 존엄, 죽음의 위엄-안락사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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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색21](35) 삶의 존엄, 죽음의 위엄-안락사에 대하여

입력
2000.07.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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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시걸의 장편 소설 ‘의사들’(1989)은 하버드 대학교 의과대학의 1958년 입학생들을 중요한 등장 인물들로 삼아 의사들의 삶을 들여다본다.소설 속에서 58년 입학생의 한 사람으로 설정된 세스 래저러스는 말기 환자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그들의 단말마를 인위적으로 단축시켜 주는 ‘죽음의 의사’다.

말하자면 그는 안락사의 옹호자다. 미국에서 안락사의 시술은 불법이므로, 래저러스는 엄연한 범법자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 그 범죄 행위는 의사로서의 래저러스가 고통받는 환자들에 대해 느끼는 인도주의적 연민과 사랑의 귀착점으로 묘사된다.

래저러스는 정치적 야망에 불타는 한 검사의 덫에 걸려 체포되지만, 변호사로 전업한 의과대학 동기생 베넷 랜즈먼의 발빠른 도움을 받아 기소 유예로 풀려난다.

자신이 창조한 ‘범죄자’ 래저러스에게 금세 자유를 되돌려줌으로써, 작가 시걸은 안락사에 대한 자신의 시각을 설핏 드러냈다고도 할 수 있다.

안락사는 분명히 불법 행위이지만, 윤리적으로 마냥 단죄하기에는 매우 미묘한 쟁점들을 안고 있는 것이다.

현실은 때로 소설적 상상력의 한계를 훌쩍 넘어서서 극적으로 치닫는다.

지난해 4월 13일 미국 미시건주 오클랜드 순회법원의 제시카 쿠퍼 판사는 ‘죽음의 의사’라는 별명을 지닌 70세의 병리학자 잭 케보키언에게 2급 살인죄를 적용해 10~15년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케보키언 박사는 90년부터 130여 명의 말기 환자들이 자살하는 것을 도왔고, 그 동안 네 번이나 기소됐지만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은 지난해의 재판이 처음이었다.

케보키언이 관여한 최근의 안락사는 법의 수호자들이 보기에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었다.

케보키언은 98년 9월 퇴행성 근육병 말기 환자 토머스 유크의 안락사를 도왔다.

흔히 루게릭병이라고 불리는 퇴행성 근육병은 환자의 신체부위가 점차 마비되며 죽음에 이르는 불치병이다.

현실 속의 잭 케보키언은 소설 속의 세스 래저러스보다 더 대담했다. 케보키언은 유크의 동의를 얻어 그의 안락사 장면을 비디오 테이프에 담았고, 그 테이프를 CBS 방송국에 건네주었다.

CBS는 그 해 11월 ‘60분’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이 테이프를 방영해 미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검찰이 케보키언을 다시 기소한 것은 이 방송 때문이다. 쿠퍼 판사는 케보키언에게 실형을 선고하면서 “이 재판은 안락사의 정치적·도덕적 올바름 여부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케보키언 박사의 범법에 대한 단죄”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니까 안락사를 금지한 실정법을 어겼다는 점에서 케보키언이 범죄자라는 것을 쿠퍼 판사는 단호히 확인했지만, 안락사에 대한 윤리적 판단은 미룬 것이다. 케보키언은 항소했고, 이 재판은 케보키언이 수감된 상태에서 진행 중이다.

안락사가 지피고 있는 논란의 불씨는 현대 의학의 발달 단계와 관련이 있다.

현대 의학은 치료할 수 없는 병들을 아직 무수히 남겨놓고 있지만, 그래서 환자들을 회복시킬 수 없는 경우가 무수히 많지만, 다른 한편 불치의 병일지라도 환자의 생명을 상당한 기간 연장시킬 수 있는 수준에는 와 있다.

그런데 그런 연장된 삶이 환자 자신에게,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그 가족에게 견디기 힘든 고통을 줄 수도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행복한 죽음’으로서의 안락사가 개입한다. 종교적 관점에서 보면 오직 신(神)만이 사람의 생명을 좌우할 수 있다.

그래서 자살이 죄악이듯, 그 자살을 돕는 의사의 행위도 죄악이다. 그러나 병의 당사자인 환자로서는 사람의 위엄에 걸맞는 죽음을 원할 수도 있다.

말기병 환자의 ‘투병’이 누추하고 수치스러운 일상으로 채워지기 십상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환자들의 이런 바람은 정당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안락사의 문제는 환자가 고통을 무릅쓰고 신(神)이 지정한 시점까지 숭고한 생명을 유지해야 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고통스러운 삶을 포기하고 죽을 권리를 지닐 수 있어야 하느냐의 문제다.

그것은 삶의 존엄이 먼저냐 죽음의 위엄이 먼저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안락사는 크게 소극적 안락사와 적극적 안락사로 나눌 수 있다.

소극적 안락사란 예컨대 의식을 잃고 인공호흡장치로 목숨을 이어가는 식물인간이나 뇌사로 판정된 사람에게서 생명보조장치를 제거하는 것처럼 비활동적인 생명의 인위적 연장을 중단하는 것이다.

적극적 안락사는 회복할 가망이 없이 통증에 시달리고 있는 환자에게 독극물이나 가스를 투여해서 죽음을 빨리 맞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안락사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사회는 거의 없지만, 대부분의 사회에서 소극적 안락사는 가족의 동의를 얻어 관행적으로 이뤄진다.

한국에서도 지난 2월부터 새 장기이식법이 시행돼 뇌사가 공식적으로 인정되었으므로, 부분적으로는 소극적 안락사가 합법화되었다고 해석할 여지도 있다.

관습적으로 인정되는 소극적 안락사에도 여러 가지 미묘한 문제가 개입한다. 환자가 의식이 없을 때 생명 연장 치료를 어느 시점까지 해야 하느냐, 그 결정을 누가 할 것이냐를 일률적으로 정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98년 5월 15일 서울지법 남부 지원은 의식이 없는 환자를 그 부인의 요구에 따라 퇴원시켜 사망하게 한 혐의로 서울 보라매 병원 신경외과 전문의 양희린씨에게 살인죄를 적용해서 징역 2년6월을 선고한 바 있다.

흔히 ‘보라매 사건’이라고 불리는 이 판결은 우리 법원이 소극적인 안락사에도 매우 엄격한 태도를 취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다.

안락사의 합법화를 찬성하는 측에서는 합법화 여부와 관계없이 대부분의 사회에서 안락사가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즉 안락사의 금지가 ‘뒷골목 안락사’를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5월 한국에도 안락사를 옹호하는 사이트 Euthanasia가 문을 열었다(주소는 www.euthana.com).

그러나 세계 대부분의 사회가 안락사를 허용하지 않는 데에는 단지 종교적 보수주의로만 몰아세울 수 없는 이유들이 있다.

안락사 반대자들은 환자들에게 죽을 권리를 허용하는 것과 의사들에게 이것을 도울 권리를 허용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즉 의사들에게 타인의 생명을 좌우할 법적 권리를 부여하게 되면, 이 권리를 남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시기에 독일군 점령지나 일본군 점령지에서 거리낌없이 생체실험을 자행했던 군의(軍醫)들에서부터 불법적인 장기 매매를 알선하는 현대의 의사들에 이르기까지, 20세기 의학사의 추악한 이면사(裏面史)에 등장하는 타락한 의사들의 존재는 이런 의구심을 부분적으로 정당화한다.

또 환자가 안락사를 바란다고 할지라도, 그 결정이 환자의 고통 그 자체보다 치료비 부담이라는 경제적 이유에서 내려질 수도 있다.

즉 회생 가능성이 남아 있어도 가족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기 위해 환자가 죽음을 선택할 우려도 있다.

우리 나라처럼 의료보험체계가 허술한 곳에서는 환자의 장기(長期) 치료가 가족들의 살림살이를 거덜낼 수도 있으므로, 이것은 현실적인 우려다.

이것보다 더 민감한 것은 장애인들의 경우다. 장애인들로 이뤄진 안락사 합법화 반대 운동 단체인 ‘아직 죽지 않았다’(Not dead yet)는 안락사가 합법화될 경우에 병원이나 보험회사에서 치료비가 많이 드는 영세민이나 난치병 환자 그리고 중증 장애인들을 안락사라는 이름으로 무더기로 죽게 만들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것 역시 근거 없는 우려가 아니다. 안락사는 우생학과 결합해서 예컨대 우리가 20세기에 히틀러 치하의 유럽이나 다른 전체주의 체제에서 목격한 조직적인 장애인 제거의 악몽을 재연할 수도 있다.

약한 마약이나 분방한 성애(性愛)에 대해 너그러운 자유주의자들이 안락사에 대해서는 마냥 너그러울 수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안락사는 삶의 존엄과 죽음의 위엄 사이에서 파닥거린다. 그것은 생명 연장 기술이 크게 발달할 21세기를 맞아 더 깊고 섬세한 논의를 요구하고 있다.

편집위원

aromachi@hk.co.kr

■외국의 안락사 관련 법률

佛·獨선 뇌사도 불인정

네덜란드 제한적 허용

대부분의 사회에서 안락사는 불법이다.

소극적 안락사까지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사회도 많이 있다. 예컨대 프랑스나 독일은 뇌사조차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안락사를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반면에 영어권의 몇몇 사회와 '자유주의자들의 천국' 네덜란드에서는 안락사 합법화의 시도가 있었거나 제한적으로 합법화되었다.

미국의 오리건주는 지난 94년에 존엄사법(尊嚴死法), 곧 ‘품위 있게 죽을 권리에 대한 법’이라는 이름으로 안락사를 합법화했다.

오리건주의 대법원도 이 법에 대해 합헌 판결을 내렸다.

안락사 합법화 얼마 뒤에 주의회의 다수파가 된 공화당이 이 법의 폐기안을 상정했지만, 97년 11월 주민투표에서 60%의 반대로 폐기안이 부결되었다.

즉 안락사가 합법화되었다. 존엄사법이 확정된 지 4개월이 지난 98년 3월에는 80대 중반의 말기 유방암 환자가 안락사를 선택해서 오리건주의 첫 합법적 안락사를 기록했다.

그러나 99년 10월 미 연방 하원은 안락사 금지법을 통과시켰고, 올 4월에는 상원도 이를 통과시켰다.

이 법이 발효되면 오리건주의 존엄사법도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호주의 경우엔 96년 노던 테리터리주가 안락사를 합법화했으나, 6개월도 안돼 연방 상원이 안락사 금지법을 통과시켜 안락사 인정법이 폐기되었다.

네덜란드 의회는 지난 93년에 제한적인 안락사 허용법을 통과시켰다. 안락사 시술의 기준은 매우 엄격하다.

그 조건들 가운데 일부를 들어보면 우선 환자가 정신적으로 온전해야 하고, 환자가 자신의 의지를 반복적으로 명시해야 하며, 다른 의사들에게도 자문을 해야 하고, 환자에게 어떤 압력도 없어야 하며, 환자의 병이 회복 불가능해야 하고, 고통을 줄일 다른 방법이 없어야 한다.

아시아의 경우엔 올 5월 대만에서 안락사 법안이 통과됐다.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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