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평화외교’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북한은 지난주 아세안 지역안보포럼에 가입한데 이어, 한·미·일 등과 잇따라 외무장관 회담을 갖고 화해협력 의지를 거듭 천명했다. 특히 한국전 이후 형식적 교전상태에 있는 미국과 사상 첫 외교 책임자 회담을 갖고, 반세기에 걸친 적대청산과 관계정상화 의지를 서로 확인한 것이 무엇보다 뜻 깊다.북·미 외무장관은 첫 만남에서 핵과 미사일 문제, 테러지원국 지정해제 등 현안에 대해서는 기존입장을 확인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현안해결을 포함한 관계정상화를 포괄적으로 다룰 큰 틀의 대화원칙에 합의한 것은 획기적이다.
적대적 입장에서 쟁점을 다투던 상황을 벗어나, 열린 자세로 전반적 관계개선을 논의하겠다는 것은 두 나라 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남북이 역사적 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장관급 회담을 시작한 것에 즈음한 이런 변화는 남북 평화공존의 틀을 굳히는 데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북·미 대화와 협상의 최종 목적지는 국교수립이다. 양쪽은 이미 여러 형태로 적대청산과 국교수립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이번 외무회담에서 양쪽은 이 기본노선을 확인함으로써 앞으로 고위급 회담과, 9월 유엔 밀레니엄 정상회의를 이용한 수뇌급 회담을 통해 수교를 위한 토대를 다질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경제난 해결에 필수적인 국제적 지원을 얻기 위해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긴요한 형편이고, 미국 또한 한반도 정세변화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제한적이던 대북 포용정책을 확대할 태세다.
그러나 앞날을 마냥 낙관할 상황은 아니다. 북한은 ‘평화와 친선’을 표방하면서도 ‘민족자주’를 앞세우고 있다. 오로지 경제지원을 얻기 위해 핵과 미사일 등 생존이 걸린 문제를 쉽게 양보하지는 않을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따라서 미일과 수교협상에서 이 문제를 경제지원 규모 뿐 아니라, 안보 보장 등과 연계시킬 것이 분명하고, 이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예상된다.
우려되는 변수는 또 있다. 임박한 미국 대통령선거와 보수 공화당이 승리할 가능성이다. 대선 와중에 클린턴 행정부가 정치·경제적 부담이 큰 북한과의 대타협을 할 것인지가 우선 분명치 않다. 또 대북 강경파들이 포진한 공화당 부시후보 진영이 승리할 경우, 포용정책을 이어갈 것인지도 우려된다.
이런 상황에서 절실한 것은 우리 정부의 흔들림 없는 화해협력 의지다. 또 북한과 미일 등을 적극 설득해 나가는 주도적 외교역량이다. 이를 위해 소모적 정쟁(政爭)을 피하고, 우리 내부의 자세부터 다져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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