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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간다네..." 벌써 설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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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간다네..." 벌써 설렘

입력
2000.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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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고 말쑥한 모습으로 아버님을 만나봬야 할텐데….” “(만난 지)50년이 넘었는데 무슨 옷을 입고 가야 언니가 날 알아볼까.”27일 북의 생존가족들을 확인한 이산가족들은 ‘8·15 상봉일’을 앞두고 벌써부터 설레고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들은 반세기만에 상봉하는 혈육을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기 위해 건강진단을 받는 가 하면, 미장원을 찾는 등 ‘시집가는 새색시’처럼 상봉준비에 여념이 없다.

특히 ‘최종 방북티켓’이 컴퓨터 추첨을 통해 생존가족이 확인된 126명중 100명에게만 돌아감에 따라 일부 이산가족들은 기도원을 찾고 불공을 드리는 진풍경까지 연출하고 있다.

오빠가 생존해 있다는 소식을 들은 김금자(68·여·서울 강동구)씨는 28일 아침 일찍 종합병원을 찾아 건강진단을 받았다. 김씨는 “건강에 이상이 발견되면 최종 방북자에서 탈락될 까 두려워 병원부터 찾았다”며 “고운 옷도 한벌 장만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아들과 딸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강기주(姜基周·90·서울 도봉구 도봉1동)씨도 이날 오전 9시께 서울 종로5가의 대형 약국으로 향했다. 강씨 가족들은 “‘고향에 가려면 건강해야 해. 영양제 좀 사러간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깔끔한 옷’장만은 이산가족들에게는 기본이다. 세 아들과 여동생의 생존을 확인한 박용화씨(83·제주)는 “옷을 여러벌 장만해 껴 입고 가서 모두 아들들에게 주고 오겠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남동생과 여동생의 생존소식을 기도원에서 전해 들은 김선희(77·여)씨는 “8·15상봉일까지 남과 북의 가족들이 모두 건강하기를 기도할 작정”이라며 “최종방북자에서 탈락하지 않도록 철야기도를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딸과 남동생 등을 확인한 김성옥(71·여)씨는 이날 아침 일찍 미장원을 찾아 ‘50년전 모습’을 되 찾느라 무려 3시간을 보냈다. 김씨는 “남동생이 날 알아보지 못할까 걱정”이라며 “미장원에 젊어지게 해달라고 특별부탁을 해놓았다”고 귀띔했다.

장래준기자

rajun@hk.co.kr

■저마다 절절한 방북계획

"생필품ㆍTV 선물하고 고향 흙 가져올테요"

북쪽에 있는 가족의 생사를 확인한 8·15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들은 50년 세월의 무게 탓인지 고향방문 계획도 저마다 절절하다.

이찬우(李燦愚·69·인천 연수구 옥련동)씨는 “북의 가족을 만나면 손목을 꼭 붙잡고 평양 대동문과 부벽루 등의 고궁과 유적지를 걸으면서 이별의 한을 씻어내고 싶다”고 말했다. 이정승(李程承·83·강원 춘천시 서면)씨는 “고향에 이제는 전기가 들어오는지, 부모님 산소는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고 기대감에 부풀었다.

경기 하남시 덕풍동에 사는 채성신씨는 “북한에는 생필품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이번에 방북하게 되면 치약 칫솔 내복 멸치 김 등을 잔뜩 가져다 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재일(韓載一·76·서울 노원구 월계동)씨는 최신형 TV를 한대 사서 가져 갈 생각이다. TV는 북한에서 귀하기 때문에 재산가치가 있고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TV를 통해 만나고 헤어진 뒤 남한의 소식을 접하라는 기대에서다.

김사용(73)씨는 “고향땅 흙을 한줌이라도 가져와 앞마당에 뿌려놓고 그 흙을 밟으며 살아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만남의 기쁨도 잠시일 뿐 또다시 헤어져야 하는데 고향과 가족의 체온을 느낄 만한 것은 무엇보다 고향땅의 흙”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일부는 북의 가족에 대한 생사를 확인한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넉넉하지 못한 형편 때문에 북으로 가져 갈 선물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고민에 빠져있다. 백모(69)씨는 “형편이 어려워 선물 준비를 못하고 있다”며 “북에 있는 가족들도 만나는 것만으로도 기뻐할 것”이라고 위안했다. 김모(73)씨도 “선물을 준비하려면 자식들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얘들에게 미안해 말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황양준기자

naige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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