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증시가 마감되고 투자자들이 객장을 따나고 있을 즈음인 오후 4시, 현대중공업은 갑작스럽게 공시 하나를 내놓았다. ‘한 집안’식구인 현대전자에 대한 2억2,000만달러 지급보증 대지급 사실을 털어놓고 상세한 부연설명도 덧붙였다.현대 구조조정위원회의 만류에도 아랑곳 않고 소송을 통해 손실을 보상받겠다며 사뭇 ‘비장한’내용의 2장짜리 발표문도 기자들에게 돌렸다.
“과거 같으면 그냥 넘어갔을 사안인데….” 투자자들이 의아해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동안의 재벌 관행으로 봤을 때 계열사 빚보증 소송은 파격적인 것이었다. “사외이사와 자사주조합, 소액주주 등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시장이 무서운 거죠.” 현대중공업의 한 임원은 “착잡하지만 오히려 잘됐다”는 이중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현대중공업 사외이사들은 지난 주말 긴급 소집된 이사회에 나갔다가 엄청난 액수의 자금을 빚보증을 선 ‘죄’로 지출해야 한다는 사실을 접하고 깜짝 놀랐다.
한 사외이사는 “아무리 그룹 계열사라도 그렇게 돈을 떼일 수는 없다”며 언성을 높였다. 과거처럼 어물쩡 처리될 경우 사외이사직을 그만두고 양심선언이라도 하겠다는 분위기였다. “주가가 3분의1 토막 났는데 무슨 소리냐”는 직원들(우리사주조합)의 항의도 거셌다.
“창업주와 그 후계자에게는 면목이 없습니다. 그 분들은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아프더라도 바꿔야합니다. 불가피한 선택이었습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의 고백이다. 현대중공업의 ‘반란’은 현대그룹 경영권갈등에 앞서 재벌개혁의 큰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김호섭 경제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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