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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인간의 존엄과 역사의 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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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인간의 존엄과 역사의 준엄

입력
2000.07.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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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유고슬라비아 국제전범재판소의 상소부는 7월 21일의 판결에서 피고 안토 프룬디지야가 강간을 포함하여 피해여성의 존엄성을 짓밟는 것을 교사, 방조하고 고문한 것에 대해 전쟁범죄로 유죄를 인정한 원심을 확정하였다.이 판결은 그동안 유고전범재판소와 르완다전범재판소가 전쟁중에 자행된 강간과 같은 성폭행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고 전쟁범죄 또는 반인도적 범죄로서 강력히 단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뜻깊다.

강간과 성폭행은 모든 나라의 국내법에서 범죄로 규정된다. 또한 이러한 범죄는 무엇보다 여성을 비롯한 인간의 존엄성과 신체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국제인권법과 전시국제인도법의 위반행위이며 특히 고문의 수단으로서 자행되는 경우 그 범죄성은 더욱 심각하다.

더욱이 강간은 평화시는 물론 전쟁이나 비상사태 등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으며 모든 국가는 전쟁범죄나 인도에 반한 죄로 처벌할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

이 사건에서 재판부는 한 여성의 인권유린뿐만 아니라 헌병대 사령관과 같은 국가조직이 관여되었다는 점을 중시하였다. 따라서 르완다의 한 시청건물에서 투치 여성들에게 자행된 조직적 강간을 방관한 아카예수 시장이 처벌된 바와 같이 책임자가 이러한 범죄를 방지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오히려 방조한 경우에 전쟁범죄로 단죄할 수 있음은 당연하다.

유고전범재판소는 또한 구금 또는 심문중에 이루어진 강간과 성폭행을 국제법이 금지하는 고문으로 인정하고 고문을 야기할 가능성이 있는 입법의 존재만으로도 국가책임을 가져온다고 하여 강력한 고문금지의 의지를 표명하였다.

국제사회가 강간과 성폭행을 전쟁범죄로 처벌하기에 이른 것은 법적인 의미만이 아니라 여성인권운동의 승리의 한 장으로 기록될 만하다.

이러한 성취의 바탕에는 무엇보다 일제의 식민강점 시기에 벌어진 일본군 위안부 또는 정신대에 대한 범죄를 국제문제로 끌어올린 한국여성들의 노력이 있었음을 주목하여야 한다.

그러나 당시 일제가 위안부를 강제로 동원하여 일본군 위안소에서 조직적으로 강간함에서 나아가 노예의 상태에 빠뜨리고 살상의 대상으로 삼아 이 사건의 경우보다 몇곱절로 심각한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그 동안 이를 부인, 은폐하기에 급급하고 한국정부를 포함한 피해자들이 속한 나라들은 일본의 경제력에 눌려 제대로 이 문제를 제기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1932년부터 잡아도 60여년이 흐른 지금에도 배상은 커녕 단 한명의 책임자 처벌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며 피해자들은 자기 힘으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올해 말 도쿄에서 민간전범법정을 열 계획에 있다.

유고전범재판소의 판결은 일제가 식민지 민중의 통제와 침략전쟁의 수행을 위해 한국여성들을 일본군 위안부로 둘러씌운 성노예의 굴레는 아무리 시간이 흘렀어도 명백히 전쟁범죄와 반인도적 범죄로 단죄되어야함을 보여주었다.

모든 문명사회에서 금지되는 강간과 노예가 중층적으로 결합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일본과 관련국가들은 오늘도 여전히 대동아전쟁의 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 된다. 냉혹하다는 국제사회에서도 정의는 느리지만 그러나 확실하게 온다.

유고재판소의 이번 판결은 인간의 존엄성을 송두리채 말살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한 정의의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또한 일본과의 현안으로 이 문제가 그 동안 남과 북이 서로 다르게 접근하던 것에서 벗어나 일제의 식민강점을 함께 당해왔던 역사에 비추어 하나된 입장에서 진정한 과거청산과 인권이 존중되는 바탕위에서 새로 올바른 해결의 길을 모색할 수 있기를 바란다.

/조시현 성신여대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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