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여·야 대치 정국을 보세요. 조선 숙종 때 상대방을 도륙시키다시피 한 당쟁과 다를 바 없잖아요? 당론이 국론보다 앞선 것도 그렇고. 그렇다고 당시 사대부들이나 지금의 정치가들을 대체할 만한 집단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래저래 민중들만 죽어납니다.”‘당쟁으로 보는 조선 역사’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 ‘사도세자의 고백’ 등 화제의 역사서들을 써 온 이덕일(39·사진) 한가람 역사문화연구소장이 처음으로 역사소설을 냈다.
조선 숙종 때의 실존인물 운부(雲浮)대사가 주인공인 ‘운부’(중앙M&B 발행·1~3권). 당시 서인과 남인 간에 펼쳐진 치열한 당파싸움을 배경으로, 운부가 이끄는 승려·서인·중인 집단의 ‘실패한’ 혁명을 다뤘다.
“4년 전 ‘숙종실록’을 뒤지다 너무나 놀라운 사건을 알게 됐습니다.
숙종 23년(1697)에 운부라는 승려와 이영창이라는 풍수사가 조선을 멸한 후 정씨를 임금으로 세우고, 청나라를 공격해 최씨를 임금으로 세우려 했다는 사건이 간략하게 기록돼 있었습니다.
더욱이 이 사건에는 전국 각지의 승려들과 화적두목 장길산까지 관련됐죠. 얼굴이 화끈해질 정도로 매력적인 소설 소재였습니다.”
이씨는 이후 의금부 수사 기록을 비롯해 각종 실록, ‘여지도서’ ‘대동여지도’ 등을 참조해 소설의 얼개를 엮어갔다.
무엇보다 치밀한 역사고증을 우선했다. 그럴수록 당시 시대변화를 읽지 못한 채 밥그릇 싸움만 해댔던 사대부들의 한계와 몰락, 운부를 중심으로 한 혁명세력의 부침(浮沈)이 눈앞에 선명해졌다.
여기에 당시 성리학자들에 의해 천민 취급을 받아야 했던 승려들의 험난한 삶까지.
“특히 눈에 띈 대목이 단순한 도적 우두머리에 불과했을 장길산이 운부대사로 대표되는 지식인 집단과 결합함으로써 혁명 세력으로 변신한 점입니다.
이들이 운주사 천불천탑을 배경으로 새로운 세상을 꿈꾸기 위한 집회를 갖는다고 생각해보세요. 우리 정치가들도 이같은 과거의 역사를 통해 현재를 겸허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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