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유린자에 대해서는 공소시효와 장소에 관계 없이 '전지구적 사법권’을 행사하는 추세가 국제 레짐(International Regime)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국제유고전범재판소(ICTY)가 21일 1992~95년 보스니아 내전 당시 부하들의 강간을 방조한 크로아티아 헌병대 책임자의 항소를 기각, 실형을 확정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인권과 정의’를 앞세운 인류의 노력은 '주권(主權)’을 앞세운 개별 국가의 도전을 받고 있다.
지난 날 보스니아와 르완다, 캄보디아 등에서 인간을 상대로 만행을 저지른 많은 전범들은 여전히 국내법의 보호를 받으며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1990년대 최악의 반인륜 범죄로 기록된 보스니아와 코소보의 '인종청소’를 단죄하기 위해 1993년 유엔 안보리 결의에 의해 설치된 ICTY는 지금껏 94명의 전범을 기소했다.
그러나 '전범의 우두머리’격인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유고 대통령 등은 재판은 커녕 여전히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지지부진한 재판 때문에 피고 7명은 공판 전에 죽었고 17명은 재판 결과에 불복, 항소한 상태다.
1994년 탄자니아에 설치된 르완다 전범재판소도 지금까지 학살 혐의 등으로 34명을 기소했으나 3명에 대해서만 유죄를 확정했다.
재판부가 지나치게 엄격한 증거주의 원칙을 고수, 80만명의 희생자들에 대한 역사적 심판이 유보됐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킬링필드’로 알려진 크메르루주의 살상극은 아직 재판소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지난 6일 캄보디아 정부가 유엔의 재판소 구성안에 동의했지만 구체적으로 판사와 검사를 어떻게 구성하고 운영할 것인지는 합의하지 못했다.
훈센 정부는 1975~79년 인구의 4분의 1에 달하는 170만명을 처형한 크메르루주 지도자들을 '정치적 화합’이라는 명분으로 은근히 감싸면서 툭하면 합의안 파기를 벼르고 있다.
선진국들도 '주권의 벽’을 높이 쌓기는 마찬가지. 유엔은 1998년 로마에서 범죄장소를 불문하고 전범을 끝까지 추적하기 위해 국제형사재판소(ICC)를 2000년까지 설치키로 합의했으나 미국 등의 반대로 아직 규정 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해외 주둔군이 많다는 이유로 미군에 대한 소추는 면제돼야 한다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 97개국이 가입한 ICC 협정의 발효에는 60개국의 비준이 필요하나 현재까지 10개국만 비준했다.
이동준기자
dj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