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대 국회가 결국 상살(相殺)의 구렁텅이로 굴러 떨어졌다. 원내교섭 단체 구성요건 완화를 위한 국회 운영위의 24일 국회법 날치기 처리로 여야는 극한대치의 길목에 접어들게 됐다.한나라당은 즉각 총력투쟁을 결의했다. 당초 경고했던대로 의사일정을 보이콧하는 것은 물론이고, 모든 투쟁수단을 동원해 싸워나가기로 했다.
이에 따라 약사법, 금융지주회사법, 정부조직법 등 각종 법안과 추가경정 예산심의를 위한 예결특위, 16대 총선 관련 법사·행자위 연석회의 등 일체의 국회활동은 파행을 면치 못하게 됐다.
민주당은 국회법까지 날치기 통과시킨 마당에 나머지 민생 관련 법안들을 강행 처리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고, 한나라당은 민주당이 단독국회를 시도할 경우 이를 실력저지한다는 방침이어서 추가 충돌의 가능성도 높다.
3당이 이처럼 16대 국회 첫 물리적 충돌사태를 빚으면서까지 원내교섭 단체 구성요건 완화 전투를 벌인 데에는 나름대로 절박한 사정들이 있었다. 우선, 자민련은 정당으로서의 생명부지를 위해선 원내교섭단체 구성이 절체절명의 과제였다.
김종필 명예총재가 지난 주말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골프회동 제의에 흔쾌히 응한 것은 이런 상황을 감안한 다목적 유인구 던지기였다.
이렇게 되자 몸이 단 쪽은 민주당이 돼버렸다. 그동안 원내교섭 단체구성 요건 완화에 애매한 태도를 보였던 민주당으로선 자칫 어물거리다간 한나라당과 자민련의 ‘제휴’를 허용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쫓기게 됐다.
민주당이 한나라당과의 상생 정치를 접으면서까지 국회법을 날치기 처리한 것은 ‘한-자’ 접근 가능성을 사전 차단하지 못할 경우 향후 장·단기 정국운영에 심대한 차질이 올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한나라당이 필사적으로 원내교섭 단체요건 완화를 저지하려 했던 데에도 이 못지 않게 속타는 이유가 있었다.
무엇보다 20석에서 10석으로 원내교섭 단체 요건이 낮춰지면 야당분열의 가능성은 곱하기 몇배로 늘어나게 된다는 우려를 갖고 있다.
또 의장경선 등의 기회를 통해 자민련 의원들을 접촉해본 결과 운신이 자유로운 인사는 극소수로 확인된 데다 JP 역시 권력에서 멀어지지 못하는 원천적 한계가 있는 만큼 교섭단체 구성을 도와줘 봤자 남 좋은 일만 시켜주게 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어쨌거나 국회법 날치기 처리로 여야대치 상황은 극한으로 치달아 여름 정국이 빙점(氷點)이하로 얼어 붙게 됐다.
홍희곤기자
h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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